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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조희연 교육감, 흔들려도 된다

입력 | 2014-08-25 03:00:00

서울교육은 한국교육 방향타
교육감은 지지그룹의 안이한 기대를 배반하고
비판그룹의 예상을 깨야 자극과 감동 줄 수 있어
진영논리 벗어나 흔들려가며 하이브리드 해법 찾는 게 당연
그런 흔들림을 누가 탓하랴




심규선 대기자

임명직 교육감 시절에 서울교육은 ‘한국 교육의 방향타’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교육은 정책의 실험장이었다. 싹수가 보이면 지방으로 모종을 나눠줬고, 그렇지 않으면 버렸다. 그만큼 자부심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달리 생각할 대목도 있는 것 같다. 임명직 교육감과 교육부는 충돌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이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선거로 서울교육감을 뽑으면서 이 말은 사라졌다. 요즘은 지방발 교육혁명도 많다. 서울교육은 오히려 ‘한국교육의 반향타(反向舵)’가 됐다. 집권당과 성향이 다른 교육감은 정부의 정책이나 지시에 거꾸로 갈 때가 잦아졌다.

갈등의 원인은 교육감이 선출직이 되면서 현장관리형에서 정책지향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다른 시도에서는 교사 출신과 교수 출신이 번갈아가며 교육감에 당선되는데 최근 서울은 유독 교수 출신 교육감 시대가 길다. 현 교육감을 포함해 20대 17명의 서울교육감 중 첫 교수 출신은 14, 15대의 유인종 씨(1996년 8월∼2004년 8월)였고, 16, 17대는 교사 출신인 공정택 씨(2004년 8월∼2009년 10월)가 교육감직을 되찾았다. 그 후에는 곽노현 문용린 씨를 거쳐 조희연 현 교육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교수 출신이다. 교수 출신은 대체로 교사 출신보다 이념적이고 논쟁적이며 정책지향적이다.

조 교육감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최근 4명의 교수 출신 교육감 중 유인종 곽노현 씨에 이어 세 번째 진보성향 교육감이다. 진보 교육감의 공과를 알 만한 때에 교육감이 됐다. 조 교육감에게 이만큼 좋은 간접 자산도 없다.

자산을 잘 활용할 방법이 있다. 많이 흔들리면 된다. 지지그룹의 안이한 기대를 배반하고 비판그룹의 당연한 예상을 깨야 한다. 양쪽 모두 흔들린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해법을 찾기 위해선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라. 지금까지는 어느 교육감이 무슨 선택을 할지 뻔히 예상돼 왔지 않은가. 어떤 교육감도 자신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진영에 자극을 준 적도, 감동을 준 적도 없다.

흔들리는 데는 원칙 하나면 된다. 지금 어떤 인재가 필요하며, 어떻게 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날 교육현장의 모든 갈등은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해법이 복잡해 단칼로는 안 된다. 자신이 갖고 있던 이념 수단 선입견을 의심하고 하이브리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안마다 진보와 보수 정책을 넘나들며 몇 번만 대찬 결단을 내린다면 진영 논리도 약해질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문용린 교육감 막바지인 6월에 14개의 자사고를 평가해 모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조 교육감이 취임한 7월에 새로 만든 잣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14개 고교를 모두 탈락시켜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 진짜 사정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미 7, 8개 고교가 지정 취소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엿가락 같은 이런 평가가 어찌 신뢰를 얻겠는가.

자사고는 조 교육감이 지정 취소를 해도 교육부, 학교, 학부모가 받아들일 리 없다. 안산동산고가 증명한다. 길고도 시끄러운 싸움이 될 것이다. 차라리 본인이 공약한 ‘일반고 전성시대’로 평가받는 게 순리다. 법과 재량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법을 앞세워 동구마케팅고교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전교조 교사 구명성 감사에 착수하면서, 법을 무시해 가며 미복귀 전교조 전임교사를 징계하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조 교육감은 서울시교육감직 인수위원회 활동백서에서 “이 백서를 머리맡에 두고, 최대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백서에는 18개 카테고리에 61개의 공약이 들어 있다. 무리다. 몇 개만 제대로 실천해도 성공이다. 그러려면 단호해야 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약해서’ 지지그룹에 흔들린다는 말이 나오는 건 적신호다.

나는 그를 진영논리의 시각에서 사사건건 비판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서울교육감 중에 몇몇은 당대의 권력자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벼락감투를 썼다. 조 교육감은 나름의 비전을 갖고 출마했고, 서울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를 재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4명의 서울교육감을 취재했다. 당시 기자들은 존경할 만한 교육감은 ‘감님’도 아니고, ‘깜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조 교육감이 ‘진보’를 ‘진짜 보수와도 통하는 사람’으로 재정의하고, ‘깜님’ 소리도 들으며, 한국교육의 방향타라는 명예도 되찾아오길 바란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서.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