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동국대제공
6:4 vs 2:8.
어떤 비율일까? 6:4는 한국대학의 인문계 대 자연계 재학생 비율이고 2:8은 2013년 삼성그룹이 채용한 대졸 신입사원의 인문계 대 자연계 출신 비율이다. 이 수치는 대학과 기업간의 미스매치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대학이 인문 사회계 중심의 교육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미스매치는 점점 심화할 것이다.
대학이 기업의 요구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초 학문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시대의 흐름을 가장 빨리 반영하고 있는 집단임을 고려한다면 대학도 기업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고부가가치 유발사업과 하이테크 산업에 꼭 필요한 신소재를 개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고, 그런 첨단기업들에게 인재를 공급하는 학과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대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과 대학이 미래를 선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대학원생들이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에서 2차전지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의 개설과 성장은 그런 점에서 한국 대학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국대 역시 6:4의 인문사회계 대 자연계 학생의 비율을 2008년부터 5:5로 맞추기 위해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었다.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도 그래서 만들었고 이 학과의 성패는 시대흐름을 수용한 교육이 대학에서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 같다.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는 2013년 40명의 신입생으로 문을 열었다. 교수진은 전임교수 5명과 외국인 겸임교원 2명. 교수의 평균 연령은 38.8세로 신설학과임을 감안하더라도 전국 대학 중 가장 젊다고 할 수 있다. 학과장 노용영 교수는 "미래 산업에 필수이자 신소재 산업의 기초가 되는 '나노 소재' '에너지 소재' '전자 정보 소재'의 필요성을 지원자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과 출범이 순조로웠다"고 말한다.
노용영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과의 신설은 시대적인 요청과 학교의 거시적인 구조변화의 일환덕분에 가능했다며 앞으로 에너지 분야와 신소재분야의 핵심인력을 길러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에너지 관련 전자신소재를 개발해 친환경 에너지원 개발의 저변을 만들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현재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이 계속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그 기초 및 응용학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학과가 다루는 영역이 나노, 에너지, 전기전자 등 첨단 분야이기에 각 분야 소재에 대한 특성과 제조 공정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산업계 변화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학기술 내에서의 융합 교육에 더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미학, 의학 등 인문사회 및 자연계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형 커리큘럼을 마련 중이다.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의 입학생 수준은 평균 1.7등급. 동국대 공대 평균 입학성적을 웃돈다. 학교는 에너지융합신소재공학과를 지원하기 위해 신입생 전원에게 100만원의 장학금을 줬고, 과 수석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차석에게는 등록금 반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현재 2학년 학생들이 3학년으로 올라갈 때는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에 연구실 당 2명의 학부 연구원을 채용하고 매월 30~50만원의 연구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재호 씨(23)의 말. "신설학과인지 모르고 들어왔지만 반도체나 그리핀 등 전자 및 에너지 분야의 신소재를 만드는데 융합학문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걸 알았다. 소위 SKY라는 상위권 대학에 비해 손색없는 교수님들 밑에서 에너지 전자재료분야의 유능한 과학자가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처럼 현재 교수 7명의 연구역량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2013년 현재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들의 SCI 논문게재 수는 2.54편(대학정보공시기준)으로 카이스트, 포스텍, 서울대 등 3강을 제치고 전국 1위권 수준이다. 재료관련 논문저널에 게재된 논문 당 영향지수(IF:최근 2년 동안 저널에 게재된 모든 논문 인용 횟수를 논문 수로 나눈 값. 수치가 높을수록 좋은 학술지라는 뜻이다)가 평균 2에 불과한데 비해 이 학과 교수들은 5.8로 전국 최고다. 교원 당 외부 연구비 수혜실적도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연세대에 이어 전국 5위에 올라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공부하는 교수 밑에 공부 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당연. 우수한 교수진과 양질의 학생들 덕에 이학과는 2학년 과목인 '유기재료' '신소재공학개론' 등 일부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 바 있다. 노교수는 앞으로 "전공과목의 50%는 영어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그는 탄탄한 공학적 기초와 인문학을 비롯한 융합 학문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연구에 몰두하면 우리만의 원천 기술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원천기술이 부족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OLED TV를 예로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42인치 OLED TV의 핵심 기술은 국산화율이 40~5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가진 외국기업은 만들어 파는 우리보다 앉아서 더 쉽게, 더 많이 돈을 번다. 우리 기업들은 핵심기술의 국산화율을 5년 안에 100%로 끌어올릴 작정이다. 융합에너지신소재학과도 이에 힘을 보태겠다."
실험데이타를 확인하고 있는 폴(오른쪽)과 렁덩씨. 폴씨는 가나에서 렁덩씨는 베트남에서 유학을 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우리 과는 시대적인 요청의 산물이다. 한국은 앞서가는 선진국과 따라오는 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어 잘못하면 설 땅을 잃을 수도 있다. 인류는 에너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첨단 소재를 만들어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도우며 공부하고 연구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게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의 미래비전이고 또한 우리 과학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노 교수의 각오는 단단했다.
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