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모지의 한국 리틀야구, 종주국 미국 꺾고 29년 만에 기적같은 월드시리즈 우승
프로야구 인기뒤에 가려 퇴색…전용구장도 7개뿐
인프라 약해 유니폼에도 ‘KOREA’ 달지 못했지만
즐기는 야구로 세계강호 모두 꺾고 감동적인 우승
“얘들아, 장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 “KOREA라는 국가명을 못 쓴 건 다 우리 탓이다!”
1980년대 프로야구가 붐을 타면서 리틀야구는 되레 뒷걸음질 쳤다. 학교중심의 야구, 입시위주의 엘리트 스포츠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1985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2연속 우승 이후 한국 리틀야구는 유성처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야구장이 단 7개 밖에 없다. 그동안 많은 어른들이 야구 인프라 확충을 노래하며 전국에 야구장을 건설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다. 프로야구를 중심으로 한 야구산업은 발전했지만 어린 선수들은 깊은 그늘 속에서 차츰 설 자리를 잃었다. 리틀야구팀이 급격하게 준 건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KOREA’라고 새겨진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우승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부족한 인프라 때문이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자동출전권을 따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700개 이상의 팀이 있어야 했다. 한국은 그 조건을 만족할 수 없었다.
● 당당하게 경기하고 야구를 즐길 줄 아는 아이들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본선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은 경기를 즐길 줄 알았다. 15일 첫 경기의 부담감으로 유럽-아프리카 대표 체코에게 끌려 다녔다. 3-3인 3회 1사 1·2루에서 박지호의 기습번트가 아웃판정을 받았으나 비디오판독을 통해 파울로 바뀐 이후 3점 홈런을 때려내며 한국은 승기를 잡았다. 이후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푸에르토리코에 8-5 승리를 거두며 우리 꿈나무들은 미국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두 차례의 한일전에서 보여준 담력과 압도적인 기술은 100개 남짓한 리틀야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줬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야구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치열한 경기가 끝나면 천진난만한 아이들로 돌아가 상대와 친구가 되는 우리 선수들은 중요한 고비에서 부담을 이기고 즐기는 방법을 알았다. 많은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강력한 상대에 대한 위축, 그리고 ‘∼이니까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야구를 즐겼다. 야구를 즐길 줄 아는 우리 아이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당당하게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선 우리 아이들. 그래서 더 대견하고 고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