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잡혀서 지구대에 왔는데 영어 아는 사람도 없고…. 여기 와서 좀 도와주세요."
지난해 6월 9일 밤 12시경. 서울 용산구에 사는 A 씨(77)는 인도인 친구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이태원에서 케밥을 팔다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연행된 상태였다.
A 씨는 지구대에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경찰은 "변호사나 가족이 아니므로 조사에 입회할 수 없다"며 문을 잠그고 막아섰다. 이 때부터 실랑이가 시작됐다. A 씨는 지구대 현관에 서서 10여 분 동안 큰 소리로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험한 말도 오갔다.
그러자 경찰은 A 씨를 지구대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위력으로 제압해 수갑을 채우며 모욕죄로 체포했다. A 씨는 이로 인해 타박상 등 전치 2주 진단의 상해를 입었다. 그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억울한 봉변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경찰의 체포가 과도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관할경찰서장에게 직무교육 등을 권고했다.
이처럼 경찰이 사건이나 민원 처리 과정에서 욕설이나 비하 발언을 듣는 경우 상대방을 모욕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 모욕죄와 관련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2011년 20건, 2012년 22건, 2013년 33건, 올해 5월까지 15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경찰청에서는 '공무집행방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경찰관서 등 소란·난동 행위 근절대책'을 마련하는 등 경찰관들에게 모욕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모욕죄로 인한 현행범 체포는 법적인 문제나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일단 모욕적인 언동을 들은 경찰관이 상대방을 직접 체포하는 건 개인적인 법적 이익을 위한 단죄에 공권력을 동원한다는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체포요건이 미비한 인권침해 문제도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반면 일선 경찰들은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을, 술에 취하거나 흥분한 상태에서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행위자들을 대처할 합리적 대안이 없다"며 "공권력 확립 차원에서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7일 서울 중구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경찰 모욕죄 현행범 체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연다.
이샘물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