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말’ 저자 “자정기능 상실… 외부 충격만이 해법” 비판
25년 전인 1989년 사회주의의 필연적 몰락을 예언하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사진)가 이번에는 쇠락한 미국 정치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근호(9,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는 정당도, 유권자인 시민도, 이익단체도 고칠 수 없다”며 ‘개혁 난망’의 현 상태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쇠퇴하는 미국―정치적 기능장애의 원천’이라는 장문의 글에서 미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변화하는 사회와 정치질서’(1968년)에서 제시했던 ‘정치적 쇠퇴’의 개념을 끌어왔다. 헌팅턴 교수가 근대화에 나선 제3세계 국가들이 정치적 불안정을 겪는 이유로 설명했던 개념이 미국의 현 정치 상황에도 들어맞을 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 현실은 암울하다. 민의의 전당인 의회는 가진 자들이 만든 이익단체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대가로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한 법안을 사는 ‘장터’로 묘사된다. 구체적인 증거로 의회 대상 로비회사가 1971년 175개에서 1981년 2500개로 늘어났고 2009년 현재 1만3700명의 로비스트가 35억 달러(약 3조5700억 원)에 이르는 로비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는 점을 든다. ‘유전 유법, 무전 무법’의 사회라는 말이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는 자신들이 양산한 규제 법안을 통해 역으로 행정부의 비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진 여야 정치권은 ‘견제와 균형’을 벗어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에 젖어 있다. 시민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과 정치제도의 문제들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전반적인 정치의 기능장애 현상이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출구가 없다’라는 소제목의 결론 부분에서 “정당과 이익단체는 정치자금과 영향력을 포기하려는 생각이 없고 대부분의 시민은 복잡한 공공정책 이슈와 씨름할 시간도, 배경도, 의지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970년대의 미국처럼 시민들이 정치적 참여와 투명성을 증대시켜 문제를 해결할 자정능력도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정치에 외부적 충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지만 충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