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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짧은 소설]내 남편의 이중생활

입력 | 2014-08-2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기호 소설가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봐요. 하 참, 기가 막혀서. 다른 집 남편들도 다 그런가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 집 남편 얘기를 좀 하려고요. 저요? 이제 결혼 9년 차가 된 주부예요. 아니요. 전업주부는 아니고요, 1년 전부터 생활비에 보탬이라도 될까 해서 아파트 단지 앞 마트에서 시간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한 명 있고요, 재작년에 전세 자금을 대출받아 지금 사는 24평 아파트로 이사 왔어요. 남편요? 남편은 대형가전제품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기본급이 있긴 한데, 판매수당에 따라서 매월 집으로 들고 들어오는 돈이 달라요. 늘 쪼들리고 팍팍한 생활이죠. 뭐, 그런 것 때문에 제가 지금 이러는 건 아니에요. 남들도 다 엇비슷하게 사니까,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죠.

문제는 그놈의 SNS인가 하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남편이 손에서 못 놓는, 그 망할 놈의 페이스북, 그 얘기를 하려는 거예요. 댁의 남편들도 다 페이스북 하시나요? 뭐, 많이들 하겠지요.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세상 사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낯선 사람들과 인맥도 맺을 수 있고….

저도 처음엔 그렇게만 생각했던 게 맞아요. 더구나 남편은 영업직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게 다 도움이 되겠거니, 판매의 일환이려니 생각한 거죠. 한데, 그게 좀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어요. 퇴근하고 돌아와서,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저녁 시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 채 혼자 킥킥거리질 않나,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도 10분에 한 번꼴로 반복적으로 만지작거리질 않나, 심지어는요 침대에서 자다 깨어나서도 더듬더듬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더라고요. 저는요, 처음에 이 인간이 바람이 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고선 저렇게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저도 그때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한 거예요. 순전히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나 감시할 목적으로….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들과 사진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는데….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라고요. 거기엔 내가 그때까지, 그러니까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 10년 넘게 보아온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감상적이고 섬세하고 따뜻한, 심지어 지적이기까지 한 남자가 있는 거예요. 일테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만 싶다. 인도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잊고 산 내 꿈들이 방울방울 튀어 오르고 있다.’

참나, 이런 걸 그 흔한 말로 지랄도 풍년이라고 하나요. 우리 남편은요, 머리가 가늘어서 비가 오는 날을 유독 싫어하거든요. 휴일에 비 오면 칼국수나 파전 같은 것을 먹고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구는 위인이죠. 그런 인간이 ‘잊고 산 꿈’ 운운하니, 이게 무슨 산성비를 소방 호스로 잘못 맞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뿐만 아니에요. ‘IT 계열’에서 일하고 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같은 자기소개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었어요(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삼겹살을 먹지 않으면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사람이에요). 제가 정말 화가 났던 건 거실이나 베란다에서 남편 혼자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후, 그 바로 아래 적어 놓은 글 때문이었어요. ‘홀로 있는 밤은 더디게 흘러간다. 외롭고 긴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뻔하죠. 엄연하게 가정 있는 인간이 사기 치면서 여자들에게 작업 걸려는 수작이죠. 그 밑에 ‘페친’이라는 여자들이 ‘어머, 오빠 쓸쓸하구나. 힘내세요, 힘!’ 같은 댓글들을 달아놓고, 거기에 남편이 또 달아놓은 ‘그래, 위로해줘서 고마워. 사는 게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 같네. 언제 술 한잔하자’ 같은 댓글들….

제가요, 그 글들 보다가 열이 나서 홧김에 남편에게 ‘페친’을 신청했어요. 어디 내 앞에서도 그따위 소릴 계속 할 수 있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요…. 그랬더니, 이 인간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다음 날 바로 페이스북에서 탈퇴를 했더라고요. 그러면 된 거 아니냐, 그냥 심심풀이로 그런 거 아니냐, 그 정도쯤 이해해 주라 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요, 아직도 마음이 안 놓여요. 페이스북은 탈퇴했어도, 여전히 집에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남편이요. 변기 위에 앉아서도 계속 셀카를 찍어대는 남편. 트위터나 밴드 같은 다른 SNS도 다 뒤져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도 이러다가 SNS에 중독될 것만 같으니, 이거 어쩌죠?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