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G제작사 ‘포스’ 최재천 부사장 ‘진짜’에 도전하는 남자… 군도 베를린 박쥐 올드보이 등 굵직한 한국영화 시각효과에 참여 짧은시간 영화관객의 눈 홀리려 한장면을 며칠씩 작업하기도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제작지원 큰 힘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에서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시각효과 적용 전과 후. 포스 제공
현실에는 없는 생물체를 마치 있는 것처럼 그려내고 상황에 맞는 안개나 눈, 바람, 먼지 등을 배우의 주변에 얹어내는 시각효과(VFX·Visual Effect·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영화상의 시각적인 효과를 통칭)야말로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최근 47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군도’의 경우 전체 3500여 개 컷 중 1400여 개 컷에 시각효과가 들어갔다. 한 영화당 시각효과가 사용되는 컷이 많게는 800여 개인데 군도의 경우 상당히 많은 시각효과가 들어갔다. 관객에게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는 장면들이지만 사실 ‘물 흐르듯’ 보이기 위해 많은 숨은 노력이 필요했다.
최재천 포스 부사장은 2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한 장면이라도 며칠을 붙잡고 있는 날이 수두룩하다”며 “눈에는 쉽게 흘러가는 장면이 우리에게는 매 순간이 도전”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포스를 이끄는 이전형 대표와 최 부사장은 경희대 산업디자인학과 91학번 동기다. 당시는 컴퓨터그래픽이란 단어도 생소했던 시절. 둘은 친구들과 함께 ‘EON’이란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당시 이들은 대학교 3학년에 불과했지만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곧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회사부터 차렸다.
대학에서 배운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써먹을 수 있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당시는 영화 관련 작업보다 홈페이지 제작 주문이 더 많았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각자 컴퓨터를 끼고 앉아 눈이 벌겋게 되도록 모니터만 쳐다보며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한국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시각효과 전문가가 됐다. 최 부사장은 “당시 ‘꼭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차리지는 않았다”며 “컴퓨터그래픽을 다루는 일 중 관심 있고 재밌는 일을 차례차례 하다 보니 결국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광고나 홈페이지 등보다 생명력이 강한 것이 영화였기 때문이다. 최 부사장은 “영화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며 오랫동안 기억해주고 다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라며 “더 강렬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현실적인 영상을 만드는 시각효과 작업은 그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지 결정하는 큰 요소”라고 말했다. 몇 날 며칠이고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고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장도리를 들고 조직원들과 싸웠던 격투 장면 기억하세요?”
2012년 영국에서 ‘역대 싸움장면 톱5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올드보이 격투신을 위해 최 부사장은 한 달을 작업실에서 밤낮없이 보냈다. 15년 동안 감금돼 있다 풀려난 오대수(최민식)가 자신을 감금한 조직원과 격투를 벌이는 내용. 이 장면에서 조직원 중 한 명은 오대수의 등에 칼을 꽂는다. 그 상태로 오대수는 조직원을 모두 쓰러뜨리고 등에 꽂혔던 칼을 뽑는 것으로 싸움의 끝을 알린다.
그 칼은 사실 컴퓨터그래픽이다. 실제 영화 촬영 중 오대수의 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 동안 최 부사장이 한 일은 그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오대수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었다. 최 부사장은 “그 외에도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학교 회상 장면은 국내 영화 처음으로 필름이 아닌 컴퓨터로 색보정을 거친 장면”이라며 “여러 부분에서 올드보이는 의미를 가지는 영화”라고 말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괴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베를린’ ‘설국열차’에서 최근의 ‘군도’까지 수십 편의 영화가 최 부사장과 이 대표에게는 하나하나 뜻 깊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시각효과를 맡았다. 최 부사장은 “인간이 만든 도시나 건물 등의 시각효과는 자연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라고 말했다. 수십 편의 영화에서 시각효과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표현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장면이 가짜야?”
시각효과를 만드는 이들에게 최고의 칭찬이다. 현재 한국 영화는 실제인지 컴퓨터그래픽인지 쉽게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영화를 만들 실력이 됐다. 하지만 아직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영화가 소위 ‘대박’이 나도 이들의 사회적·산업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보다 월등히 많은 작업량이 요구되는 불공정한 관행들도 여전하다.
포스는 군도 촬영 당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디지털콘텐츠 컴퓨터그래픽 제작지원 사업의 큰 도움을 받았다. NIPA는 콘텐츠 분야 산업 중 국내 컴퓨터그래픽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작 및 국내외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컴퓨터그래픽 지원 업체만 10여 곳에 이르며 업체당 평균 5억4000만 원 정도를 지원했는데 군도가 그중 하나다. 최 부사장은 “더 좋은 기술로 더 멋진 장면을 만들고 싶은 것은 모든 영화인의 꿈이다. NIPA의 예산 지원은 영화인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NIPA는 이 밖에도 스마트·차세대·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지원도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사무공간 및 관리비를 지원하는 등 입주공간을 마련해주거나 회의실 자료실 등을 직접 지원해주기도 한다.
포스는 올해 초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 위탁운영기관인 ㈜에이지웍스(AZ Works)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시각효과 작업과 애니메이션 제작이 공존하는 첨단 디지털 시네마 스튜디오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포스에는 또 한 번의 도전인 셈이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