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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 어깨 견주던 교통-물산 중심, 50년 뒷걸음질… 역앞엔 텅 빈 상점들

입력 | 2014-08-28 03:00:00

[국가대혁신 '골든타임']
부농의 고장 옛말…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가보니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한국의 곡창인 호남평야에 자리 잡아 예부터 논과 부자가 많은 곳이었다. 1912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돼 신태인역이 생기면서 1970년대까지 주변을 아우르는 교통과 물산의 중심지가 됐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반도 최대의 벼 도정공장이 1980년대까지 돌아갔고 논 100여 마지기(2만여 평)는 지어야 대농(大農)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신태인읍은 대전과 비슷한 시기인 1940년 면에서 읍으로 승격됐지만 주민 수는 70여 년 전보다 훨씬 줄었다. 신태인읍의 현재 인구는 6600명. 1960년대 2만6000여 명의 4분의 1수준이다. 같은 기간 대전은 인구 15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91년 역사의 신태인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3000여 명(1970년대)에서 270명으로 줄었다. 그것도 수년 전 인근 4개 초등학교와 통폐합한 결과다. 최고 72학급으로 2부제 수업을 하던 이 학교는 이제 한 학년에 두 반을 꾸리기도 벅차다.

14일 신태인 읍내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텅 빈 모습이었다. 역 바로 앞에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어 있는 가게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역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59)는 “30여 년 전 3.3m²(1평)당 500만 원까지 하던 상가 땅값이 지금은 100만∼150만 원에도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익산행 통학열차를 타러 나온 학생들이 수백 명씩 몰려들고 서울행 특급열차가 하루 10여 차례 설 때마다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붐비던 역은 하루 이용객이 150여 명에 불과한 한산한 시골역으로 변했다. 부안 등 인근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재래시장은 현대화 사업으로 외양은 말끔해졌지만 손님보다 물건 파는 상인이 더 많았다. 최대 규모의 도정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양곡창고는 마트로 변한 지 오래다.

신태인 출신 이익규 정읍시의원(60)은 “농업이 쇠퇴한 데다 철도와 고속도로 등 교통이 발달하니 보니 일자리와 자녀교육 때문에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며 “서울에서 동창회를 열면 고향에서 열 때보다 더 많이 모인다”고 말했다. 전북도 김철모 행정지원관은 “현행 8 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적어도 6 대 4로 바꿔야 지역 개발과 주민이 원하는 일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읍=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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