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식민지배 반성하고 사죄’ 총리들 계승한 무라야마 담화 ‘담화는 결코 바꿔선 안된다… 한일 정상, 위안부 결단 내려라’ 원로의 단호한 서울 강연 20년째 풀리지 않는 난제…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는 강한 집념 느껴져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내가 무라야마 씨를 만난 것은 약 30년 전. 성실했지만 만년 야당인 일본 사회당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어서 설마 총리가 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정치 격동기 속에 총리가 돼버린 것은 딱 20년 전. 가장 놀란 것은 본인이었다.
제1당이면서 과반에 못 미치는 자민당이 제2당 위원장이던 무라야마 씨를 추대해 연립정권을 만든 것이다. 오래 대립해 온 상대방의 제안을 “농담하지 말라”며 거절했던 무라야마 씨였지만 마지막엔 마음을 굳히고 받아들였다.
모처럼 총리가 된 만큼 자신만 할 수 있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1995년 8월 15일 발표된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는 그런 의욕에서 탄생했다.
담화의 핵심은 다음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책을 그르쳐서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 대하여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가 가져온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 대하여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아시아에 대한 사죄의 결정판이 된 이 담화는 연립 정권의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각료 중에는 유명한 자민당 우파도 있어 ‘침략’에 대한 사죄가 내키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 얼마 전 국회에서 채택한 전후 50년 결의 논의 과정에서는 “그 전쟁은 아시아를 해방했다” “한국 병합은 합의에 따른 것이다”라는 등의 이론이 분출해 결의를 하고도 역효과만 낳은 바 있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이후 역대 총리에게 계승돼 일본의 반성을 나타내는 용도로 크게 활용돼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시부터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불만을 품은 의원 그룹이 있었다. 그 안에 초년 의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씨도 있었다. 지금 총리의 지위에 있는 그는 당시 우파의 기대를 모은 희망이었다.
무라야마 정권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민간 모금을 활용한 해결을 도모했다. 국가 보상을 하려면 입법이 필수적인데 당시 정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책이었다. 총리를 그만둔 뒤에는 기금의 이사장도 맡아 애썼지만 한국에서는 이해를 얻지 못하고 끝났다.
이 문제는 꼬일 대로 꼬여 지금도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도무지 못 견디겠다.’ 무라야마 씨는 서울에서 이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종착점을 찾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8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을 통해 위안부 문제 결단을 일본에 요구했지만 동시에 내년 ‘국교 정상화 50년’을 향한 긍정적 자세도 내비쳤다. 슬슬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