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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천하무적 명궁들 목동 와주는 게 영광”

입력 | 2014-08-28 03:00:00

야구장서 소음극복 훈련 양궁대표
넥센은 흔쾌히 3번이나 장소 제공
박병호 등 선수들도 “배울 점 많다”




인천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2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소음 적응훈련을 하고있다. 몇 분 후 폭우가 내리면서 선수들은 빗속에서 활시위를 당겨야 했다. 임민환 스포츠동아 기자 minani84@donga.com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의 야구장 활쏘기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를 앞두고 양궁 선수들은 시끌벅적한 야구장에서 실전 훈련을 한다. 대한양궁협회는 몇 해 전 역대 양궁 메달리스트를 대상으로 ‘가장 효과가 좋았던 훈련을 꼽아 달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 바로 야구장 훈련이었다. 26, 27일 양궁 선수들은 KIA와 넥센의 경기가 열린 서울 목동구장을 찾았다. 2011,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목동 방문이다. 다음 달에 개막하는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치른 최종 리허설이었다.

▽그런데 의문 하나. 왜 하필이면 넥센의 홈인 목동구장이었을까. 관중석 규모나 전광판 시설 등을 고려하면 서울 잠실구장이나 인천 문학구장이 훨씬 낫다. 양궁 대표팀은 예전에 잠실이나 문학구장에서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 장영술 양궁 국가대표팀 총감독은 “넥센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넥센은 굉장히 우리를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다른 구단들에는 우리가 사정을 해야 하지만 넥센은 흔쾌히 야구장을 빌려준다”고 했다. 이번에도 양궁 대표팀은 이틀 연속 야구장을 사용했다. 첫날은 리커브(일반적인 양궁) 대표팀이, 둘째 날은 컴파운드(양 끝에 도르래가 달린 활) 대표팀이 팬들의 함성 속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했다.

▽양궁 선수들의 야구장 훈련은 팬들에게 색다른 이벤트일 수 있지만 구단이나 야구 선수들에게는 감수해야 할 불편이기도 하다. 30분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야구 선수들은 좀더 일찍 야구장에 나와 훈련을 빨리 끝내야 한다. 방문 팀에도 사정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한두 번 야구장을 빌려주던 구단들도 서서히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넥센은 다르다. 한마디로 언제든 환영이다. 김기영 넥센 홍보팀장은 “눈앞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더없는 영광이다. 세계 1위인 양궁에 비해 넥센은 아직 한국에서 1등도 못해본 팀이다. 전광판 등 시설이 좋지 않아 양궁 선수들이 멋지게 쏜 활이 제대로 팬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혁신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양궁과 넥센은 많이 닮았다. 양궁은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훈련 방식을 끊임없이 개발해 왔다. 밤에 공동묘지 가기, 휴전선 철책 지키기, 번지점프 하기, 야간산행 등이 대표적이다. 야구장 훈련도 혁신의 일환으로 2000년대 초부터 했다. 모기업이 없는 야구전문회사인 넥센 역시 다른 구단들이 흉내 내기 힘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네이밍 마케팅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을 통한 2군 운영을 하고 있다.

▽26일 양궁 선수들이 야구장 훈련을 시작하려 할 즈음부터 목동구장에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비가 내려 야구경기가 취소되는 와중에도 양궁 남녀 선수들은 끝까지 활시위를 당겼다.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 오진혁은 그 와중에도 10점 과녁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비에 흠뻑 젖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양궁 선수들을 넥센 선수들은 기립 박수로 맞았다. 홈런 1위 박병호는 “장인(匠人)들을 본 것 같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구단의 마인드는 열려 있고 선수들은 배우려는 자세가 돼 있다. 넥센이 지난해부터 강팀으로 자리 잡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