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분석]‘세월호 투쟁’ 손잡은 756개 단체는
5월 22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다.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단체 가운데 일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광우병 사태,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주요 이슈 때마다 반정부 성격이 강한 연대모임을 결성해 집회나 시위를 주도했다. 동아일보DB
이런 대규모 집회나 장기 농성은 익숙한 장면이다. 대형 이슈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국민대책회의’ ‘○○범국민운동본부’ 같은 공동기구는 항상 정해진 코스처럼 집회나 농성을 이어간다. 공동기구 내에서도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 단체보다는 전국 단위의 단체들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대표적인 곳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이다.
참여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전국 단위 단체의 지역 조직을 개별적으로 포함시키는 것도 특징이다. 참여 단체가 수백 개인 곳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몸집을 불린다. 민노총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같은 단체의 경우 경기지부 강원지부 등 지역 조직들까지 대거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 단체 중 일부는 최근 수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슈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용산 참사, 제주해군기지 건설, 쌍용차 정리해고, 광우병 사태 등이다. 당시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000개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공동기구에 이름을 올렸다. 사안의 유형이나 성격은 천차만별이고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 배에 탄 것이다.
동아일보는 과거 발족한 공동기구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성명서 등에 명시된 참여단체 리스트를 확인하고 집계한 뒤 국민대책회의 참여 단체와 비교했다. 2006년 결성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는 270개 단체가 있는데 40개가 같았다. 한미 FTA는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시작돼 2011년 이명박 정부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도심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열리는 등 심한 진통을 겪었다. 2008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는 무려 1841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이때도 전국 단위의 단체들이 주도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이 과장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장기간에 걸쳐 촛불집회 개최를 주도하며 반정부 투쟁을 이어갔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단체 가운데 254개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9년 ‘이명박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 대책위원회’도 “정권에 의한 살인이 저질러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도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끊이지 않고 있다.
○ 과거 집회 주도 인물들 ‘단골 등장’
매번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단체가 비슷하다 보니 인물도 같은 사람이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인사들은 과거에 활동한 공동대책기구 때에도 주도적으로 일했다. 손종표 공동상황실장과 이재근 공동상황실장은 각각 민노총 조직국장과 참여연대 정책기획팀장 출신이다.
또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태현 공동운영위원장은 쌍용차 범대위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양한웅 공동위원장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등을 지냈다.
과거 집회시위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인물도 있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 대표와 함께 광우병 대책회의에서 활동한 박원석 당시 상황실장은 현재는 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이달 20일 같은 당 의원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샘물 evey@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