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작가 ‘에른스트 윙거-필립 로스-길리언 플린’ 데뷔작 동시 출간
◇강철 폭풍 속에서/에른스트 윙거 지음/노선정 옮김/364쪽·1만5000원·뿌리와이파리
◇굿바이, 콜럼버스/필립 로스 지음/정영목 옮김/480쪽·1만5500원·문학동네
◇몸을 긋는 소녀/길리언 플린 지음/문은실 옮김/384쪽·1만3500원·푸른숲

‘강철 폭풍 속에서’의 저자 에른스트 윙거, ‘굿바이, 콜럼버스’의 필립 로스, ‘몸을 긋는 소녀’의 길리언 플린(왼쪽부터). 이들의 데뷔작에는 작가 초년 시절의 열정과 날것 그대로의 생동감이 넘친다. 뿌리와 이파리·문학동네·푸른숲 제공
전자는 마치 25세를 넘어선 운동선수처럼 아무리 맹연습해도 타고난 재능을 뛰어넘는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자는 영어공부처럼 문학도 꾸준히 노력하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몇몇 작가를 콕 집어 예로 들기도 한다.

‘몸을 긋는 소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고 있는 스릴러 소설 ‘나를 찾아줘’로 유명해진 미국 작가 길리언 플린의 2006년 데뷔작이다. 살인사건 취재차 12년 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이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다가가는 과정을 담았다.
작가론 논쟁을 생각하며 이들의 데뷔작을 쭉 읽어봤다. 결론은 작품, 작가마다 케이스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는 것. 그럼에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데뷔작은 이들의 어떤 작품보다 열정과 생기가 넘치며 이후 출간된 대표작들의 원형(原型)적 요소가 녹아 있다는 점이었다.
‘강철의 폭풍 속에서’는 윙거가 병사로 참전해 두 눈으로 직접 본 전쟁터의 참혹성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그의 대표작 ‘대리석 절벽 위에서’에 비해 날것 그 자체라는 느낌이 강했다. 소설 속에는 ‘총을 뽑아들고 독일군 두 명과 육탄전을 벌이던 영국군 한 명을 쏘았다’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부드럽고도 축 늘어진 살을 밟으며 진저리를 쳤다’ 등 자신의 살인 행위까지 기록됐다.
‘굿바이, 콜럼버스’에 나오는 농구선수 론 파팀킨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스의 대표작 ‘미국의 목가’에 나오는 청년 스위드를 연상시킨다. 20대 중반에 쓴 작품인 만큼 문장이 경쾌하다. 문학동네 조연주 편집부국장은 “데뷔작에 어렴풋이 느껴지던 요소는 작가가 작품을 계속 쓰는 과정에서 명확해진다”며 “원형적 요소를 찾아보는 것도 데뷔작을 읽는 맛”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