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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자화상

입력 | 2014-08-30 03:00:00


자화상
윤동주(1917∼1945)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자화상’.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면서도 도심 속에 이런 별천지가 있는 것을 어찌 몰랐을까. 초록의 향연을 배경으로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향기가 어우러진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 수송동 계곡 모습대로 복원한 옛 돌다리까지 풍경에 힘을 보탠다. 늦은 여름휴가를 틈타 모처럼 친구와 ‘등잔불 밑’ 탐색에 나섰다. 옥인동 마을버스 종점에서 시작해 발 닿는 대로 산길을 한가롭게 걸어 다녔다. 쉬어갈 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천만 인구로 복작이는 수도 서울이 이보다 아름답고 근사할 수가 없다. 600년 도읍지의 운치와 질서를 망가뜨린 고층건물과 주거공간도 너그럽게 감싸 안아준 병풍 같은 산들 덕분이다.

어느새 산책길 끝자락에 이르니 자하문 고개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나온다. 버려진 물탱크와 가압장을 개조한 건축물인데 요란한 외관도, 현란한 치장도 없는 아주 작은 공간이 퇴적층처럼 세월의 흔적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다. 광복을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의 순수한 시심(詩心)과 맞춤하게 어울린다. 공익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이유다.

건물 안에 3개의 단출한 전시실이 차례로 연결돼 있다. 친필 원고와 사진이 전시된 첫 번째 방에서 ‘자화상’을 만났다. 가을의 길목에서 우물에 비친 자신을 성찰하는 식민시대 청년의 서늘한 시선이 자기반성을 상실한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22세 윤동주가 자화상을 쓰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발발하고 곧 창씨개명이 개시되는 시절이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 이 자유와 풍요의 시대에 대한민국에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자신의 이중성을 너무 잘 알 텐데 위선과 비열함, 자기기만의 옷을 걸친 듯 다들 너무도 당당하고 떳떳하다. 이런 시대에 시인은 서울의 언덕 위 문학관에 살아남아 ‘나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잠시 되새김질하게 한다.

지금은 빼앗긴 나라도 국어도 이름도 되찾고, 원조 받던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어 의식주도 넉넉한 세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갈수록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어버리는 우리네 모습이 씁쓸하다. 햇수확에 감사드리는 한가위 명절, 제발 자기 밖을 향한 ‘지적질’은 멈추고 자기 안의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 맑은 영혼의 외침에.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