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윤동주(1917∼1945)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자화상’.
어느새 산책길 끝자락에 이르니 자하문 고개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나온다. 버려진 물탱크와 가압장을 개조한 건축물인데 요란한 외관도, 현란한 치장도 없는 아주 작은 공간이 퇴적층처럼 세월의 흔적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다. 광복을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의 순수한 시심(詩心)과 맞춤하게 어울린다. 공익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이유다.
지금은 빼앗긴 나라도 국어도 이름도 되찾고, 원조 받던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어 의식주도 넉넉한 세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갈수록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어버리는 우리네 모습이 씁쓸하다. 햇수확에 감사드리는 한가위 명절, 제발 자기 밖을 향한 ‘지적질’은 멈추고 자기 안의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 맑은 영혼의 외침에.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