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에 검거 요청 공문 발송…권력층 내부 기밀 폭로 우려하는 듯
2013년 10월 10일 중국 단둥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조선국립민족예술단(왼쪽). 1월 3일 북한 평양시내에서 열린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의 공연.
중국 당국은 지난 두 달 새 많은 탈북자를 잇달아 체포했다. 7월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지역에서 탈북자 27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20일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의 수용 시설 ‘투먼시 공안 변방대대 변방 구류심사소’에 수용됐다. 8월 12일에는 중국·라오스 국경을 넘으려던 탈북자 11명이 윈난성 쿤밍 지역에서 체포됐다.
이에 대해 탈북자 상황에 밝은 중국 내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국가급 예술단 단장이 중국에서 잠적했고 이를 추적하려고 북한과 중국이 협력해 탈북자 루트를 샅샅이 뒤지는 과정에서 탈북자 조직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탈북한 단장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이 여성이 외국으로 망명할 경우 큰 문제가 된다고 여긴다. 중국은 물론 중국을 벗어났을 개연성도 있다고 보고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국경선 지역에서도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와 북한 당국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잠적 여성은 국가급 단장
사라진 예술단 단장이 어느 예술단의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국가급 예술단이란 점과 중국에 왔다 사라졌다는 점에서 조선국립민족예술단 단장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과 더불어 북한의 3대 예술단 가운데 하나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국가 간 공연에 북한을 대표하는 단체로, 최근 들어 중국 공연을 자주 하는 등 중국과의 교류가 잦았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해 10월 북·중 접경 도시인 랴오닝성 단둥에서 대규모 공연을 해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공연은 당시 열린 ‘북·중 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 행사 중 하나였다. 중국 관영매체 ‘중국신문사’는 당시 공연에 대해 “혁명 가무 위주의 기존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의 인기 가요를 부르는 등 일반인을 위한 공연으로 관객 수천 명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을 북한의 일류 예술가 40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 문화외교의 주력군으로 소개하고, 단둥 공연에는 단원 100여 명을 보냈다고 전했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은 지난해 초에도 한 달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를 순회 공연했다.
북한이 중국에 매우 이례적으로 검거 요청 공문을 발송하면서까지 국가급 예술단 단장을 붙잡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여성 단장이 북한 예술단 내부의 기밀을 상당히 많이 알아 이를 폭로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처럼 긴장하는 점으로 미뤄 여성 단장이 가진 기밀이 북한 권력 지도부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에서 10년간 활동한 바 있는 탈북 예술인 K씨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2007년 남한으로 넘어 온 K씨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탈북 예술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이다. 또 한 명의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 예술인은 수년 전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술단원과 북한 권력자 간 특수 관계를 설명했다.
지도부와 예술단 그리고 기쁨조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출신인 북한 무용수 조명애(왼쪽). 2013년 10월 7일 공연을 위해 중국 단둥시에 도착한 조선국립민족예술단원.
K씨는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이나 만수대예술단 등 중앙 예술단의 단장은 매우 비중 있는 자리”라며 “김정일이 직접 임명했다”고 말했다. 단장 임기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 날 갑자기 단장이 바뀌곤 했으며, 단장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주로 지휘자 등 예술적 재능이 있는 이가 맡았다는 게 K씨의 증언.
‘예술단 여성 단장 탈북’ 소식에 대해 K씨는 “내가 알기로 예술단 단장이 여성인 경우는 없었다”면서 “만일 여성이 단장이라면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여성이 많은 남성을 제치고 국가급 예술단 단장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K씨는 “만일 여성이 단장이라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처지에서는 비밀 노출을 우려해 이런 여성의 외국 망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조선국립민족예술단 단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임명해왔다면 현재 단장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임명했을 공산이 크다. ‘국가급 예술단 여성 단장 탈북’ 소식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단장은 김정은 정권의 어떤 비밀을 안고 있을까. 지도부와 예술단 간 각종 설과 추측이 난무하는 북한이기에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4년 8월 9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