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트리오’ 어머니 故 이원숙 여사 [잊지 못할 말 한마디]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
내가 기도를 위해 찾아갔을 때 정 교수의 노모는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그 앞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찬송가를 펴는 순간이었다. 그분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래된 노래 부르지 말고, 새로운 노래를 불러주세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목회자로 예배를 인도하면서 그런 요청은 처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분의 요청은 다른 연세가 많은 분들과 달랐다. 나이가 많을수록 오랫동안 불러온 익숙한 노래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실제 연로해서 투병 중인 분을 위로하기 위해 예배드릴 때는 그분의 오랜 체험 속에 녹아든 옛 찬송가를 선택한다. 또 목회자가 듣고 싶거나 부르고 싶은 찬송을 물어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이 여사의 말씀은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 자녀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운 어머니의 비결을 그 한마디에서 느꼈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다. 익숙한 것과의 과감한 결별이다. 늘 익숙한 문화에 젖어 과거를 지켜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화에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이다.
어르신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되는 것은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수 있고, 젊은이들이 진보적으로 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노래를 불러달라”는 그 말에서 난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통합하는 현재를 발견했다.
어르신들은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이는 모험을 즐기고, 젊은이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 사회가 아름답게 통합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목회 과정에서 건강한 가정을 방문할 때 발견하는 공통점이 있다.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말을 경청하는 가풍이다.
이후 나는 하나의 꿈을 꾸게 됐다. 이 땅의 어르신들이 당신은 잘 모르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을 존경하며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해 귀 기울이는 대한민국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