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사진부 차장
그런데 지난주 끝난 각 대학의 하계 졸업식장 곳곳에서는 학생들과 축하객들이 금속 막대기에 스마트폰을 끼워 ‘셀카’를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학로나 명동거리에서도 셀카봉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연인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지난달 중순 헝가리로 교환학생 연수를 떠난 대학생 조카도 짐에 봉을 하나 넣어 떠났다. 자전거를 즐기는 50대의 선배 기자도 이것을 적극 추천한다. 접으면 20cm, 펴면 1m 길이 막대기의 이름은 ‘셀카봉’이다. 영어 이름은 ‘셀피스틱(selfie stick)’.
인도네시아의 21세 여성 다이애나 헤마스 사리 씨가 발명가라는 주장도 있고, 온라인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코간이 작년 11월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에게 시제품을 보냈다는 기사도 검색된다. 산악 사이클 등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이 헬멧에 카메라를 고정하려고 사용한 액세서리가 시초라는 설명도 있다. 원조 논쟁과 상관없이 올여름 TV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더니 휴가철 필수 준비물이 되었다.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문화는 관계지향적이고 집단주의적 경향이 강한 반면 서양은 개별적인 사물과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했다. 한국 신문에는 등장인물이 많은 사진이 미국 신문보다 훨씬 자주 실린다. 일반인들도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누군가의 얼굴이 잘리는 걸 피하려고 애쓴다. ‘나, 너’라는 표현 대신 ‘우리’라는 표현에 익숙하고 친구들을 평등한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셀카봉 열풍은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셀카봉의 두 번째 혜택은 카메라를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어느 앵글로도 위치시킬 수 있고 구도도 마음에 들 때까지 옮겨볼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찍는 기념사진은 셔터를 서너 번밖에 못 누른다.(‘투명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나르시시즘적 매체로 보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현대인에게 셀카봉과 스마트폰의 타이머 기능은 축복이 아닐까 싶다.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올 때까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가을이면 동아마라톤을 비롯한 각종 마라톤 대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주최 측의 카메라는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 셀카봉 열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