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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에서 ‘빅토르 최’ 얼굴이…

입력 | 2014-09-02 03:00:00

러 ‘블라디보스토크 록스’ 페스티벌




지난달 31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젊은이들이 한국 밴드를 보기 위해 비록스 페스티벌 무대 뒤로 몰렸다. 김희권(앞줄·드럼)을 비롯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멤버들이 환호에 응했다. 열기는 케이팝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나의 맘에 불을 밝혀줘/어둠을 볼 수 있게… 저 밤하늘 위로 날 보내주오/태양을 볼 수 있게!” (갤럭시 익스프레스 ‘호롱불’ 중)

지난달 31일 오후 8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에 위치한 스포르티브나야 항구. 바다를 면한 이곳 특설무대에 2000명의 관객이 몰렸고 이윽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한국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 중, 객석에 대형 태극기와 한글 응원문구 ‘대박’이 등장한 거다. 케이팝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었다.

이날 무대에는 4시간 동안 한국 밴드 5개 팀이 연달아 올랐다. 이날까지 사흘간 열린 제2회 비록스(V-ROX·블라디보스토크 록스) 페스티벌이 한국에 피날레 무대를 통째로 내주면서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디오테잎, 헬리비전, 데드 버튼스, 웁스나이스의 릴레이 공연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공연이 끝나자 무대 뒤편으로 수십 명의 러시아 젊은이가 몰렸다. 한국 밴드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이 인파는 ‘갤럭시!’를 연호했다. 공연 때 태극기를 흔든 이는 검은 머리의 리가이 알렉세이 이그레비치 씨(20). 카레이스키의 후손이라는 그는 “4년 전 한국 록에 빠져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광팬이 됐다. 한국 록에선 부모님이 좋아하는 빅토르 최 같은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했다. ‘대박’ 문구를 흔든 제냐 씨(22)는 “지난해 서울 홍익대 앞 라이브 클럽에 가본 뒤 한국 록의 팬이 됐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씨(31)는 “이디오테잎은 세계적으로 성공할 밴드”라고 말했다.

이곳 젊은이들은 한국 록에서 빅토르 최(1962∼1990)를 떠올렸다. 최는 1980년대 옛 소련에서 변혁과 저항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실어 나른 한국계 록 가수다. 현지에서 만난 20∼22세 젊은이들은 “빅토르 최는 전설이다. 그를 뛰어넘을 음악인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의 사후에 태어난 세대지만 그가 이끈 록 밴드 ‘키노’의 노래 ‘혈액형’ ‘밤’을 여전히 혁명가로 인식했다.

지난해 비록스 페스티벌을 만든 일리아 라구텐코(46·밴드 ‘머미 트롤’ 리더)는 빅토르 최를 잇는 러시아 록 스타다. 지난달 30일 밤 만난 그는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미국 영국 북유럽에서 활동했지만 내 출생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동아시아의 록 거점을 만드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는 “한국 록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고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비록스의 구심점이기에 피날레 공연을 맡겼다”고 했다.

이번 축제에는 일본 서머소닉 페스티벌의 나오키 시미즈 총감독을 비롯해 유럽, 미주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음악 발전을 위한 회의도 가졌다. 바통은 서울로 넘어온다. 비록스에 패널로 참여한 공윤영 잔다리페스타 대표는 “다음 달 10∼12일 서울 서교동 일대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잔다리페스타에 머미 트롤을 포함한 러시아 음악인 4개 팀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