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문학박사(역사학 전공)로 오랫동안 서울대 교수를 지낸 사학계 원로 학자다. 김영삼 정부에서 최초 여성대사로 주(駐)핀란드 대사를 지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주러시아 대사로 임명했다. 1988년부터 4년 동안 KBS 이사를 해 방송도 꿰뚫고 있다. 여성의 전화 이사, 참여연대와 역사문제연구소 자문위원 등 약자를 위한 사회활동 경력이 돋보인다. 지금 야당이 어려웠던 시절 이 이사는 그들 편이었다. 진보 보수를 넘나들며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던 그를 조상까지 들춰내며 쓰러뜨리려는 진영논리가 야멸치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이 이사의 조부 이명세(1893∼1972)를 친일 인사로 낙인 찍었다. 좌파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의 기술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지만 야당이 헌법에서도 금지된 연좌제(緣坐制)로 이 이사를 후려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씁쓸하다. 그를 주러시아 대사로 보낸 DJ가 저승에서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