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매부도 상반된 세월호 해법 한쪽은 대통령에 유족 만나라 하고 또 한쪽은 憲政 지켜내라 한다 국가 존속 위한 난제 쌓이는데 ‘세월호 분열’로 지새우는 나날 국민 설득할 제1주체는 대통령, 감동 없는 추석 메시지론 안 돼 대통령 無策의 위기가 가장 위험
배인준 주필
▽매부=좋든 싫든 정국을 풀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우선 김영오 씨도 포함해 유족을 만나주는 게 옳다. 김 씨만 빼면 또 문제가 엉킬 것이다. 야당은 위임·대리 기능을 잃었다. 그런 점에서는 여당에 좋은 기회이지만 여당은 자신감이 없어 스스로는 못 푼다. 수사권·기소권이 대통령을 건드릴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대통령 눈치만 본다. 성역 없이 수사하고 기소한다고 해도 결국 법조인 자격을 가진 사람이 담당하는 건데 (대통령에 대해) 무도한 일을 벌이겠나. 대통령이 만나주고 크게 아우르는 것이 정치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야당은 머쓱하지만 국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족들도 추석 전에 안 풀리면 국민 속에서 고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처남=정치가 사회에 포획되는 과정이다. 소수의 큰 목소리에 국가 중심추가 흔들리면 나라가 위험하다. 세월호 유족의 아픔은 이해하지만 집권당이 국민에게 법치의 원리원칙을 밝히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의정치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사례를 만들면 결국 국민이 값을 치르게 된다. 유족이 입법권에 직접 관여하고 정치권이 이를 수용한다면 4·19 후의 헌정 위기와 일맥상통한다. 4·19 직후 희생자 가족의 국회 점거, 그 기세에 밀린 의원들의 부정선거·축재 관련자 가중처벌 소급입법, 사회혼란 속의 김일성 만세 소리에 이어 5·16이 났다. 지금도 점증하는 혼란은 위기의 불길한 조짐이다.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는 게 답이 되겠는가. 헌정을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문재인 의원이 아무 계산도 없이 동조단식을 했을까. 유족에게 힘을 실어줘서 수사권·기소권을 손에 쥐도록 해주는 것이 대통령을 무릎 꿇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음 직하다. 대통령이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문 의원 자신이 생산적인 정치를 하는 것보다 대선 재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로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법도 소용없다.
오늘 대한민국은 5000만 국민의 안전보장과 민생불안 완화, 국가 존속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싸매고 대응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북한발(發) 위기, 국내 군사안보 시스템 내의 신뢰 위기, 미중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질 것 같은 군사외교적 난제들, 경제와 기업과 민생의 구조화된 위기…. 견제 받지 않는 사법부 일각의 국민 오도(誤導) 판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앞장서는 법치 파괴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밑둥치가 뽑히는 것 같아 두렵다. 그러나 야당만 나무란다고 ‘세월호 이후’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비극적 현실이다.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소리를 한데 모아 국가난제들을 하나하나 타개할 제1주체는 역시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힘을 모으기 위해 대통령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무 감동도 없는 추석 메시지 같은 것이라면 암담하다. 대통령 무책(無策)의 위기가 그 어떤 위기보다 위험하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을 지켜내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