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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권순활]‘국가 탓-대통령 탓’ 도를 넘었다

입력 | 2014-09-04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다수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화성인 판사’가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전주지법 군산지원 이형주 부장판사는 그래도 너무 심했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서 불법 조업하다 어선이 뒤집혀 선원 3명을 숨지게 한 선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지난달 27일 기각했다. “세월호 사고로 왜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돼야 했는지는 눈을 감고 세월호 사건 재판의 피고인들을 처벌함으로써 넘어가려는 국가의 태도가 이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영장기각 논리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선장의 불법 조업이 빚은 인명 사고를 ‘국가 탓’으로 돌린 그는 석 달 전에는 여객선 안전점검 서류 허위 작성자들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해양안전은 국가의 격(格)이 올라가야 해결된다”고 강변했다. 작년 2월 스포츠 도박사이트를 개설해 3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 선고공판에서는 “거악(巨惡)을 저지르는 국가가 피고인을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앞으로 “국가 잘못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범죄자들이 급증할 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국가 탓, 정부 탓, 대통령 탓’의 과잉은 넉 달 넘게 이어진 세월호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시위에는 ‘대통령이 책임져라’라는 주장이 단골 메뉴다. 어느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라는 식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난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국 영사관 앞에서는 일부 반(反)정부 성향 재미교포들이 ‘당신이 죽였다. 박근혜’ ‘지옥에 가라. 박근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세월호 비극의 주범은 돈에 눈이 멀어 선박을 불법개조하고 승객 안전관리를 내팽개친 유병언 일가(一家)와 청해진해운, 선장과 선원들이다. 일부 해양 관련 공무원의 안전감독 소홀과 초기 구조대응 혼선, 선박 안전 관련 강화 법안 처리를 미루고 유병언의 석연찮은 재기를 도운 정치권의 책임이 그 다음쯤이다. 대통령도 국정의 최고사령탑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은 면키 어렵지만 핵심 책임자들의 잘못에는 입을 다물면서 대통령과 중앙정부가 주범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명백히 사실을 왜곡한 선동이다.

10여 년 전의 과거도 쉽게 망각하는 나라지만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유난히 ‘대통령 탓, 정부 탓’을 하는 세력의 노골적인 당파성과 이중잣대도 한번 짚고 넘어가자. 2003년 2월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때 이들이 당시 대통령이나 당선자, 중앙정부를 비판한 기록을 찾긴 어렵다. 희생자들을 위한 특별법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2년 6월 북한의 도발로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한 제2연평해전 다음 날 대통령이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 일왕과 함께 웃으며 손을 흔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는 극우 산케이신문의 ‘찌라시성 악성 보도’까지 열심히 퍼 나르며 한국 대통령 흠집 내기에 열을 올렸다. 세월호 사태를 정권 흔들기로 몰아가는 세력과 박근혜 정부의 이념적 성향이 비슷했더라도 과연 그들은 지금처럼 ‘대통령 책임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을까.

대통령이든, 정부든 잘못하면 비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무슨 일만 터지면 객관적인 사실 규명이나, 잘못의 수위에 합당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그들’만 탓하고 희생양 찾기에 집착한다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국가 탓, 대통령 탓, 정부 탓’은 분명히 도를 넘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복침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