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만든 영웅’ 이유로 교과서에서 사라진 유관순 실제로 널리 알린 사람은 초창기 교과서 집필자들 우파에 대한 학계 반감 시정되지 않으면 올바른 역사교육은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창해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3년 동안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를 제작했다. 철수와 영희, 바둑이가 등장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어교과서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중년 이상의 세대에 낯익은 ‘철수’ ‘영희’ 캐릭터의 산파역이었다. 그는 2010년 타계했지만 2006년 한 학술잡지에 ‘나의 국어 편수사 시절’이라는 회고의 글을 남겼다. 그는 이 글에서 유관순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과정을 전하고 있다.
어느 날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논의하다가 3·1운동 때 우리 여성 가운데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활동한 사람을 찾아내기로 했다. 그와 함께 교과서를 만들던 사람은 소설가 전영택이었다. 박창해는 이화학당의 여학생들이 3·1운동 때 맹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이화여고를 찾아갔다. 그는 신봉조 이화여고 교장을 만났고, 신 교장은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던 사람이 서명학 교감이니 그분에게 물어보라”고 알려줬다.
이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을 널리 알린 주인공은 전영택 박창해와 유관순의 조카 유제한이다. 이 시기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유관순 전기인 ‘순국처녀 유관순전’을 전영택이 1948년 펴낸 것을 보아도 이 회고는 꽤 신빙성이 있다.
일각에서 제기해온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화학당 출신의 박인덕과 신봉조 교장이 자신들의 친일 행적을 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주장이다. 올해 선보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이 유관순을 다루지 않고 있다. 최근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친일 전력이 있는 박인덕이 발굴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연구 성과가 있어 교과서에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연구 성과’로 제시한 논문을 찾아보니 근거가 너무 허술했다. 박인덕과 신봉조가 1978년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대담을 하면서 박인덕이 “우리나라가 해방되면 한국 여성의 애국자로서 유관순을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과, 신봉조가 “박인덕 선생이 (유관순에 대해) 열렬하게 하던 그 말씀이 한국 민족에게 알려진 거죠”라고 밝힌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이들이 유관순의 존재를 외부에 전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겠지만 유관순이 영웅으로 떠오르기까지는 훨씬 여러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유관순기념사업회에 참여한 김구 이시영 등 독립운동가들도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 유관순의 순국투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유관순은 친일파가 발굴한 영웅’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논문을 교과서에서 유관순을 제외하는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정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되돌리는 문제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검정에서 국정 체제로 바뀌더라도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집필하게 될 것이다. 학계의 편향성이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국정이든 검정이든 올바른 역사교육은 요원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