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한국씨티은행의 ‘자율근무제’
《 한국씨티은행 재무기획부의 하성두 과장(40)은 요즘 아침식사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하 과장의 특기는 계란말이. 아내와 두 아들은 날마다 하 과장이 요리한 계란말이를 배불리 먹는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하 과장이 두 아들을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준다. 하 과장은 “아침마다 네 식구가 식사를 함께하면서 두 아들과의 대화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
한국씨티은행은 직원 스스로 근무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자율근무제와 ‘패밀리데이’(매주 수요일) 등을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야근을 하지않는 ‘패밀리데이’에 씨티은행 직원들이 ‘칼퇴’를 하면서 사옥(서울 중구 청계천로)을 나서고 있는 모습. 한국씨티은행 제공
주부인 아내 최지연 씨(39)도 “남편이 일찍 출근할 때는 아침식사나 저녁식사를 같이할 시간조차 없었고, 아이들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도 엄마 혼자 해야 했다”며 “사춘기라 감정 변화가 큰 아들의 정서에 특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선택제는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 내에서 출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제도로 오전 10시 반까지 출근하는 직원은 오후 7시 반까지 근무하면 되고, 특정 요일만 지정해 사용할 수도 있다. 총 근로시간이 유지되기 때문에 급여나 복리후생도 동일하다.
씨티은행의 자율근무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하 과장처럼 ‘워킹맘’이 아닌 ‘워킹파더’들도 육아 가사 등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 하 과장은 “아내가 일을 하지 않지만 자녀 교육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말 현재 54명의 남자 직원이 자율근무제를 통해 출퇴근시간을 조정하며 사용하고 있다.
자율근무제로 인해 퇴근시간이 더 늦어지거나 야근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일과 중 집중근무시간을 정해 이 시간에는 불필요한 회의를 소집할 수 없고, 업무와 무관한 연수 등의 참여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직원들이 본인의 업무에만 매진할 수 있다.
부분적 원격근무제를 선택한 직원은 일주일에 최대 4일까지 사무실이 아닌 집이나 원격지 사무실에서 업무를 수행해도 된다. 전체 원격근무제는 사무실이 아닌 자택이나 원격근무지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굳이 회사로 출근할 필요가 없다. 전 세계에 영업망을 갖추고 있는 씨티은행의 자율근무제는 60개국 1만5000여 명의 직원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씨티은행은 자율근무제와 상관없이 ‘패밀리데이’로 지정된 매주 수요일은 전 직원이 오후 6시에 ‘칼퇴’를 한다. 다만 야근을 꼭 해야 할 업무가 있을 때는 야근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금요일 역시 ‘셀프데이’로 지정돼 있어 일찍 퇴근한 뒤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자율근무제 도입 전에는 일과 삶의 균형에 관한 직원 만족도가 70% 안팎이었지만 도입 이후 90% 수준에 이른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해졌고, 직원 입장에서는 경력 단절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은행권 최초 ‘여성위원회’ 운영
특히 2006년에는 한국씨티여성위원회와 다양성위원회를 은행권 최초로 설립해 좀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여성위원회는 △교육개발분과 △네트워킹분과 △사회공헌분과로 이뤄져 여성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수평적으로 토론한 뒤 실제 제도로 정착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