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가 미래의 레전드에게]<6>여자 핸드볼 임오경 - 김온아
“함께 뛰었다면 너의 플레이를 커닝했을 거야.” “감독님은 감히 제가 넘을 수 없는 진정한 전설이세요.” 한국 여자 핸드볼 ‘우생순 신화’의 주역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왼쪽)과 여자 핸드볼 대표팀 에이스 김온아가 핸드볼 공을 맞잡고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다짐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여자 핸드볼의 살아 있는 전설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은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기둥 김온아(26·인천시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뭔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막냇동생 같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임 감독은 핸드볼에서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센터백 출신이다. 김온아도 센터백이다. 팀의 공수를 조율하고 전열의 균형을 유지하는 ‘컨트롤 타워’다. 농구로 치면 ‘포인트 가드’다.
“내 팀 선수였다면 ‘리더’로 만들었을 거예요.”
임 감독은 늘 김온아의 적극성이 아쉽다. 김온아는 “감독님이 절 정확하게 보신다”고 인정했다. 임 감독은 “센터백은 나를 버리고 팀에 헌신하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온아는 소극적”이라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수인데 안 하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임 감독에게 김온아는 대단한 후배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이후 세대교체가 시급했던 한국 여자 핸드볼에 불쑥 나타난 ‘20세’ 김온아를 임 감독은 잊지 못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김온아를 처음 대면한 임 감독은 김온아의 ‘핸드볼 DNA’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약 같은 시대에 함께 운동을 했다면 “온아의 플레이를 ‘커닝’했을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온아를 처음 보고는 ‘물건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핸드볼을 했거든요. 그런데 온아는 ‘남자’ 스타일의 핸드볼을 하더라고요. 그만큼 운동 신경과 감각이 대단했어요. 축구를 해도 잘할 수 있는 독특한 스텝도 가졌어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해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지는 ‘우생순 신화’의 주역인 임 감독으로선 김온아가 힘든 훈련의 고통을 이겨낼 ‘금빛 추억’이 없는 게 못내 안타깝고 미안하다.
특히 런던 올림픽 부상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김온아는 런던 올림픽 3, 4위전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놓치는 순간 목발을 한 채 벤치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임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료들한테 미안함도 있었을 테고, 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몸을 겨우 만들어서 출전한 올림픽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런던 올림픽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된 김온아는 다른 사람의 인대로 부상 부위를 접합하고 나사로 고정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수술한 인대 부위에 염증이 생겨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힘든 재활 끝에 가까스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김온아는 아직도 부상 두려움에 떤다.
“런던 올림픽에서 다친 게 마지막 부상이면 좋겠어요. 최고의 선수지만 부상 때문에 중요한 경기에 못 나간 전례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대표 선수 생활을 한 임 감독은 2007년부터 8년째 태극 마크를 달고 있는 김온아의 ‘지금’이 핸드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임 감독은 “실책이 나오면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때이고, 스스로 더 채찍질을 해야 할 때”라며 “온아가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 적극적인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임 감독의 애정 어린 당부에 김온아는 “핸드볼의 레전드인 감독님 말대로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코트에서 더 적극적으로 펼쳐 보여야겠다”고 화답했다.
“많이 좀 먹어, 몸매 관리하니?”(임오경 감독)
“먹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아서요….”(김온아)
진지했던 두 레전드는 만남 마지막에 다시 ‘여자’로 돌아갔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