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서울 잔디 광장의 혼잡은 더했다. 한쪽엔 천막 장터가, 다른 쪽엔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었다. 분향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비 때문인가 직원에게 물었더니 “요즘은 발길이 뜸한 편”이라고 했다. 광장 한가운데 깃대에 묶여 젖어 엉켜 있는 노란 리본들이 눈에 거슬렸다.
시 청사 양옆은 1인 시위 팻말이 차지하고 있었다. 철거용역업체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민원과 조립가옥을 철거당하며 장애인의 점유권을 빼앗겼다는 민원, 두 건의 팻말이 입구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시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릴레이 단식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세찬 비가 들이치는 천막 안에 돗자리를 깔고 100여 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사진과 플래카드, 벽보들을 살피며 세종대왕상을 향해 천천히 가로질러 가자 웬 남자가 “빨리 안 가고 뭐 합니까” 소리를 지른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피로감과 적대감이 확 끼쳐왔다. 덜컥 겁이 나 유족들을 만나려는 계획은 접기로 했다.
광장 건너 교보빌딩 앞에는 경찰차들이 방벽처럼 길게 서 있었다. 대로 곳곳마다 의경들과 경찰차가 진을 치고 있은 지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두 달이 넘는다.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돼 별 생각 없이 살다가 새삼 광화문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근처 직장에 다니는 한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요즘 광화문은 ‘한국이 경찰국가 같다’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이 각종 시위와 플래카드로 덮여 있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하긴 워싱턴 파리 도쿄, 선진국 어느 수도를 가도 이런 혼잡과 긴장된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던 3일에도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우산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광화문 곳곳을 찍고 있었다.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마음이 복잡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프다’라는 새삼스러운 자각부터, 왜 우리는 갈등을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풀어야 하나, 정치와 국회는 뭘 하고 있나, 차라리 외국인들 눈에 띄지 않는 특정 지역을 따로 정해 불만을 표출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