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캐스터 최유진 씨는 바둑과 방송 일을 사랑한다. 좀더 바둑팬들에게 알찬 정보를 전하기 위해 매일 바둑기사를 읽어보고 바둑사이트는 물론 대국결과를 챙긴다. 한국기원 제공
바둑TV를 켜면 늘 나오는 얼굴이 있다. 최유진 바둑캐스터(32). 타고난 미모에 아마추어 5단의 실력을 바탕으로 매끄럽게 프로그램을진행해 이름이 높다. 그는 또 각종 기전의 개폐막식과 조인식 등 여러 행사에서 진행을 도맡다시피 하는 바둑계의 얼굴이다. 일부에서는 "혼자만 독식하느냐"며 반은 농담, 반은 시샘 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 3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근처의 바둑계 사랑방인 카페 '유전(有田)'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바둑TV를 보면 거의 매일 보이는데, 맡고 있는 프로가 몇 개인가.
"사실 매일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바둑캐스터로서 간판 프로를 맡고 있기는 해요. 고정 프로는 바둑리그와 렛츠런배, 그리고 KBS바둑왕전입니다. 특히 바둑리그가 목금토일 저녁 7시부터 생방송으로 나가는데, 바둑 팬들이 워낙 즐겨보는 프로라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아요."
―방송을 잘하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날의 바둑 기사를 꼭 읽어봅니다. 바둑사이트도 챙겨보고 대국결과는 수시로 휴대전화로 체크합니다. 또 대국자 프로필도 봅니다. 일상적인 일이지요. 요즘에는 방송 준비차원에서 스포츠중계를 듣고 있어요. 3년 정도 진행했을 때였어요. 내 이야기가 너무 틀에 박힌 듯했고,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스포츠 중계를 일삼아 듣기 시작했어요. 야구나 골프, 게임 프로를 틀어놓고 집안일을 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좋은 표현이나 억양, 톤 등을 바둑프로를 진행할 때 응용하기도 합니다. 또 좋은 말이나 표현을 어디서나 적을 수 있게 집안 곳곳에 포스트잇과 펜을 놓아두고 있습니다."
그는 바둑 외에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방송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스키와 자전거를 좋아하는 활동파 여성이다. 스키는 6세부터 배워 바둑으로 치면 "아마추어 5단 정도"의 고수라고 한다. 겨울이 아닌 비 시즌에는 자전거를 주로 탄다. 5년 전에는 산악자전거를 배워 하남의 일자산 등을 올랐는데 주변에 다치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에는 자전거로 바꿨다. 지금 살고 있는 반포에서 시작해 미사리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요즘은 잠실정도까지만 다닌다.
―바둑 전문가로서 요즘 눈에 띄는 기사들이 있나요.
바둑계 풍토가 달라진 점에 대해서 묻자 "글쎄요"라며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1인자가 바뀌었네요. 박정환은 요즘 보면 바둑이 안정적입니다. 어떤 때는 진행하다 방송이라는 것도 잊고 속으로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올해는 세계대회에서 타이틀 한 개 정도는 따낼 것으로 믿습니다."
바둑방송을 하다가 어려웠던 순간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도 아니면서 바둑프로를 진행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악플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바둑캐스터라는 자리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프로 기사인 해설자에게 질문도 해야 하는 데 그 일이 있고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쉬운 질문을 하지 못했다. 곧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다 나를 지켜보던 어느 해설자 한 분이 술자리에서 '자격지심 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며 물어봐라. 축구캐스터들도 얼마나 알겠느냐. 아마 5단이면 고수이고, 상당한 전문가다'라며 위로를 해줘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바둑계 사랑방인 카페 유전에서 만난 최유진 바둑캐스터. 바둑방송 근 10년차의 관록이 묻어난다. 한국기원 제공
그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인터넷 바둑 7단 실력인 아버지의 권유로 동네 바둑교실을 찾았다. 바로 반포의 권갑용 도장이었다. 이세돌과 최철한 등이 이 도장에서 입단준비를 하던 때였다. 한살 밑인 이세돌이 2,3일에 한번씩 치수고치기 바둑을 둬줬다고 했다. 그는 "그 때 이세돌이 나를 좋아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호호호"라며 웃었다. 도장에서는 박성수, 김찬우 사범에게 바둑을 배웠다.
그러다 세화중 1학년 때 바둑을 그만뒀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어머니가 "바둑과 공부를 병행해 보라"고 권유해 세화여고 때 다시 바둑돌을 잡았다. 하지만 입단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여하튼 명지대 바둑학과에 들어갔다. 바둑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대학생활 자체를 즐겼다. 치어리더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2005년 대학을 졸업한 뒤 인터넷사이트인 타이젬에 바둑 기자로 들어가기도 했다. 단순히 말하는 것을 글로 옮기면 되겠다 싶어서 들어갔는데 그게 쉽지 않아 2주 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스카이바둑에서 바둑진행을 하면서 지역케이블 방송의 MC, 모 회사 사내아나운서 등 가리지 않고 방송 일을 했다. 그 때의 방송경험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다 2006년에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바둑TV에서 진행을 맡아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던 것. 지역케이블에서는 자신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었지만 바둑TV에서는 뭔가 바둑전문가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대우도 훨씬 좋았다.
하지만 바둑TV에서 일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근 3년 가까이 초점국만 진행했던 것. 이 프로는 새내기 진행자들을 키우는 일종의 훈련 프로로 보통 몇 달이면 다른 고정 프로를 맡는 게 관례였다. '방송에 내가 안 맞는 모양'이라며 그만둘까하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때였다. 바로 그 무렵 바둑리그 진행자로 발탁됐다. 바둑리그 진행은 자싱파로 치면 저녁 9시뉴스 진행자처럼 바둑캐스터들에게는 로망이다. 보통 바둑캐스터의 코스는 초점국→각종 기전→바둑리그 진행의 수순을 밟는데 자신은 한 단계를 건너뛰어 오른 것.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선망의 대상인 KBS바둑왕전 진행도 맡게 됐다. 바둑캐스터로서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 때문에 요즘 그는 불안하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아있다는 불안감이다. 재작년 프로 하나가 후배에게 넘어간 적이 있었다. 올라가기만 했던 그에게 그 일은 충격이었다. "정상급 기사들이 큰 승부에서 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바둑 팬 중 한 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을 보내왔는데 그냥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정상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그는 지난해 말 피부과 의사와 결혼해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아직 2세 계획은 없다. 남편은 바둑 둘 줄을 모르는데 자신이 나오는 바둑TV를 즐겨 본다고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진행하는 지 맞추는 정도를 지나 이제는 프로 기사가 돌을 놓는 손 맵시를 보며 누구의 손인지를 알아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방송에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이 바둑으로 금메달 3개를 땄을 때 현지와 전화연결을 했는데 "목이 메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또 조훈현 국수가 자신과 같은 프로에 나왔을 때 '그토록 닮고 싶었던 분과 같이 방송을 하게 되다니…'라며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에게 기억나는 실수담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더니 "엄청 많다"며 웃었다. 그 하나로 김영삼 사범과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생방송 큐사인을 받고 다시 인사를 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웃을 수도 없어 거의 울 뻔한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나간 것을 꼽았다. 또 장고 대국 때 화장실을 가지 못해 참다 참다 마이크를 떼고 급한 볼 일을 해결한 일도 있다고 했다.
어느 금요일에는 오후 7시 생방송 진행자가 펑크를 냈는데, 6시 20분 양재동에 있다가 급하게 전화를 받고는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겨우 시간에 맞춰 화장도 못하고 생얼로 바둑을 진행한 일도 기억난다고 했다.
1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 내내 그는 말하기 좋아하는 타고난 방송인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이세돌-구리 10번기'를 조명하는 바둑TV 추석특집 프로그램을 녹화하러 가야한다며 자신의 애마 '미니'로 뛰어갔다.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