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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부의 불평등’ 논쟁 부른 피케티 교수 9월 방한

입력 | 2014-09-06 03:00:00

“부자 증세를” “성장이 답”… 피케티 논쟁 2차돌풍 오나
정부통계로는 괜찮은데… “소득 불평등 심화된건 사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 그러니 부(富)의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이 40을 갓 넘은 프랑스의 소장(少壯) 경제학자가 조만간 한국 사회를 크게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학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43)가 이달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화제의 저작인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한국어판도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다.

지금 국내 경제계에선 피케티를 모르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피케티 연구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피케티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여권의 증세 논쟁을 촉발시켰다.

정부는 이런 현상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중산층 몰락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는 마당에 이런 유의 소득분배 논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영 달갑지 않다. 일단 경제 관료들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를 삼가는 분위기지만 일군(一群)의 보수 경제학자들은 피케티 주장의 허점과 비현실성을 연일 가차 없이 파고들고 있다. 좋든 싫든 한국도 이미 피케티가 만든 태풍의 한복판에 빠져들고 있는 분위기다.



숫자로는 괜찮은데… “불평등 보기보다 심각”

피케티는 저서에서 미국 등 20여 개국의 경제지표를 통해 이들 나라의 소득분배가 얼마나 불평등해졌는지를 분석했다. 그러나 이 분석에서 한국은 빠져 있다. 피케티가 분석 자료로 삼는 과세(課稅) 정보에 대한 접근이 한국은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에서 벌어지는 피케티 논쟁의 핵심은 한국은 과연 외국에 비해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냐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분석하느냐에 따라, 무슨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답이 천차만별이다.

일단 정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한국의 소득분배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고비로 점차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올라간 지니계수(수치가 클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는 2009년 0.320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지난해에는 0.307까지 내려왔다. 상위 20%의 평균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5분위 배율도 2009년 6.11배에서 지난해 5.70배로 떨어졌고, 상대적 빈곤율 역시 소폭 하락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분배를 강조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분배지표가 악화되고,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오히려 개선되는 모순된 추세를 보인 것이다.

문제는 이 통계의 대표성과 신뢰성에 논란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 지표의 토대가 되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는 전국 8700가구의 가계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매월 꼼꼼히 분석해 발표된다. 그러다 보니 자기 소득이 드러나길 꺼리는 부유층의 응답률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중산층, 서민 가구를 중심으로 통계 조사가 이뤄지고 전체 평균치를 왜곡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청이 지난해 표본을 2만 가구로 넓히고 응답자의 부담을 줄이는 형태로 조사했더니 2012년 기준 지니계수(가처분소득 기준)가 기존의 0.307에서 0.353으로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0.35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9위로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우리가 일부러 배제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기존의 가계동향조사 방식은 고소득층의 응답 이탈률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문 응답이 아닌 실제 납세 통계를 갖고 계산하면 이런 소득불평등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가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국민들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현재 44.87%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48.16%)보다 낮을 뿐 일본(40.50%) 영국(39.15%) 싱가포르(41.85%) 등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이 점유율은 최근 수년간 주요국 가운데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이 방식은 국가별로 소득 기준이나 세금의 범위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정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해법 논쟁 후끈

상당수의 민간 경제학자들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분배지표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되는 추세이고 그 속도도 빠르다”며 “적정한 분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자료보다 실제 상황이 나쁘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동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여러 지표들을 보면 소득불평등은 분명 확대되고 있다”며 “어떻게든 일단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소득분배의 악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기술 발전과 이에 따른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 및 자본 이동의 자유화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한국은 몇 가지 요인들이 추가된다. 외환위기 이후 계층 분화가 심해졌고, 고령화가 진행되며 노인 빈곤층이 급증했다는 점이 한국의 분배 수준을 다른 나라들보다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제각각이다. 국내 일부 학자들은 피케티의 주장대로 고소득층이나 자본가에 대한 세율을 지금보다 크게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나 국내 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섣부른 주장이라는 견해도 많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피케티 이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본수익률을 낮추거나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며 “한국은 지금 세금을 올리면 기업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 세수가 줄고 재정 적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선 둘 중에서 성장률을 높이는 게 더 좋은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기업이 투자를 하면 결국 노동소득이 올라간다는 점을 피케티가 간과하고 있다”며 “그간 기업의 자본과 경제성장률의 관계 등을 감안하면 피케티 이론은 한국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피케티 신드롬이 그간 국내에서 연구가 소홀한 편이었던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대선을 장식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증세에 관한 논쟁이 다음 선거에서 보다 진화된 모습으로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 토마 피케티 ::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로 1971년 파리 외곽에서 태어났다. 그는 22세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과 런던정경대(LSE)에서 ‘부의 재분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2년간 강의한 뒤 프랑스로 돌아왔고 2006년에는 파리경제대를 설립하는 책임자 역할을 했다.

그는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항상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의 경제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또 르몽드 등 프랑스의 여러 유력 일간지에서 외부 칼럼니스트로 활약해 왔다. 일각에서는 피케티가 이번에 책 한 권으로 ‘반짝 스타’로 떠올랐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는 매우 오래전부터 소득 재분배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 왔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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