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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전통좌파는 죽은 별”

입력 | 2014-09-06 03:00:00


에마뉘엘 마크롱 장관

“나는 기업을 사랑한다!”

총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앞에 앉은 재벌 총수와 기업인들이 환호를 보낸다. 이어서 “프랑스는 당신들을 필요로 한다!”고 총리가 말하자 다시 한 번 터지는 박수 소리. 지난주(8월 25일) 우리나라 전경련에 해당하는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모임에서 젊고 잘생기고 에너지 넘치는 스페인계 프랑스 총리 마뉘엘 발스가 두 번에 걸쳐 기업인들로부터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는 장면이 연출됐다. 프랑스는 사회당 정권이 아니던가. 아닌 게 아니라 프랑스는 지금 발칵 뒤집혔다.

바로 전날 발스 총리는 탈세계화의 기수였던 아르노 몽트부르 경제산업장관을 해임하고, 36세의 젊은 은행가 출신 에마뉘엘 마크롱을 새 장관에 임명했다. 유복한 의사 부모 밑에서 자란 젊은 수재 마크롱은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은 바로 프랑스가 돈을 버는 것이다”라고 기업과 국가를 동일시했다. 자신의 사상을 ‘사회 자유주의’(소셜 리버럴리즘)로 명명한 그는 2013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권리의 확대만을 주장하고, 정기적으로 봉급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통적 좌파는 죽은 별과 같다. 전통 좌파 이데올로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근 2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가 와해되는 순간을 목도하는 듯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선 이후 사회당 정부는 상위 1% 부자에 대한 75% 세금 정책 등을 기세 좋게 밀어붙인 바 있다. 하지만 루이뷔통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벨기에에 귀화 신청을 하고(나중에 취소했지만),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러시아 국적을 따는 등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부자 증세 정책을 곧 철회했다. 그 후 줄곧 세계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싸울 것인가가 사회당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시간만 허비했을 뿐 2년간의 경제정책은 완전한 실패였다. 엄청난 실업률이 치명적이었다.

잘나가는 독일에 대한 굴욕감도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재정적자가 610억 유로인 데 비해, 독일은 1980억 유로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프랑스 사람들은 잘사는 독일 사람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가져간다. 2013년 시간당 임금은 독일이 31.3유로, 프랑스는 34.3유로이고 노동 시간은 독일이 주당 40.7시간, 유럽연합(EU)이 40.4시간인 데 비해 프랑스는 35시간이다. 과거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유럽 경제의 ‘슈퍼스타’로 뛰어오르는 동안 세계화 논쟁만 하고 있던 프랑스는 정체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연두교서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책임, 연대 협약’ 정책을 발표했다. 노동 비용 감소, 세금 개혁, 일자리 창출 등 한마디로 친기업적 정책이었다. 좌파를 울부짖게 만들고 기업가들을 만족시켰던 이 정책은 ‘세계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좌파가 죽을 수도 있다. 분배하기 위해서는 생산해야 한다. 생산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후 8개월간 내부 투쟁 끝에 완강한 반대자였던 경제산업장관을 해임하고 친기업 철학을 가진 경제장관을 앉힘으로써 그의 정책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좌파는 도대체 언제, ‘분배하려면 먼저 생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