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황호택 칼럼]새정연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내부에 있다

입력 | 2014-09-10 03:00:00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문성근이 공천 좌우한 의원들 강성 좌파성향 다수
“새정연 의원총회서 합리적 온건론 펴기 어렵다”
보수우세 이념 지형 탓 말고 내부의 ‘낡은 진보’ 혁신해야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은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여론조사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한다”고 자탄하듯 말한다.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논거로 지역, 연령대별 인구, 이념의 지형을 든다.

연령대별 인구를 놓고 보면 새정연에 불리한 것은 맞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지속하면서 새정연을 지지하는 젊은층의 인구가 줄고 새누리에 호의적인 노령층의 인구가 늘고 있다. 젊은층의 투표율도 낮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6·4 지방선거에서는 60대 투표율이 74.4%로 제일 높았고 30대가 47.5%로 바닥이었다.

그런데 새정연이 노령층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측면이 강하다. 노령인구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새정연에는 선거 때만 되면 노인층이 투표소에 안 나가기를 비는 것 말고 다른 전략은 없는 것 같다. 분단국가라서 이념의 지형이 보수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선거를 통해 집권하려는 정당이 할 말은 아니다. 새정연이 계속 야당으로 남을 생각이라면 북한의 도발에 침묵하고 국가 안보에 소홀한 당이라는 인상을 고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새정연의 좌판에는 젊은 강성(强性)들만 그득하고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노령층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원로급이 보이지 않는다.

새정연은 변화 경쟁에서도 새누리에 밀린다. 특권 내려놓기를 비롯한 정치개혁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통째로 내어준 분위기다. 이번에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바람에 김 대표의 특권 내려놓기 개혁이 빛바래긴 했지만 그가 툭툭 던지는 보수혁신 제안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에게 다소간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김 대표는 얼마 전 관훈클럽 토론에서 “출판기념회는 분명히 정치자금법 위반이고 탈세”라며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은 출판기념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의원들은 정치자금법 위반자에 탈세 범법자라는 비난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출판기념회를 하기 어렵게 됐다.

새정연 사람들의 오만과 독선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과 싸웠던 민주화운동 이력에서 나오는 듯하다. “우리가 감옥에 드나들며 싸울 때 당신들은 권력에 빌붙어 호의호식했거나 비겁하게 숨죽이고 살지 않았느냐”는 정신적 우월감의 과잉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김 대표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엄혹한 시절에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했던 사람이다. 민주화운동도 어떤 민주화운동이냐를 살펴봐야 한다. 새정연의 젊은 의원들 중에는 선배들이 고통스럽게 쟁취한 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중엔 평소엔 잘 보이지 않다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발언을 팩팩 내지르는 오만방자한 ‘싸가지’들이 많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도 새정연은 아예 포기한 것 같다. 무슨 일만 생기면 새정연의 모태인 광주로 내려간다. 그러나 광주 전남의 민심도 예전 같지 않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18년 만에 호남에 새누리당의 깃발을 꽂았다. 지역적으로 새정연의 텃밭인 호남 인구가 영남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호남 인구를 고려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연은 서울시장을 차지하고 강남지역을 제외한 구청장의 대부분을 싹쓸이했지 않은가.

새정연 비례대표 의원 21명은 거의 전부가 좌파 성향 시민단체 출신의 강성이다.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문성근 씨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역구에도 강성 좌파 성향이 많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안이 계속 부결되고 장외 투쟁으로 나가는 것은 내부의 이런 기울어진 구도 때문이다. 한 중도파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이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장외 투쟁에 반대하는 온건론을 개진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의 이념 지형이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새정연 의원총회가 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새정연은 민심이 떠난 줄 모르고 세월호 주변만 맴돌다가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새정연은 바깥의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지 말고 내부의 낡은 진보를 혁신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스스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놓고 단일화와 연대로 세 불리기를 해본들 지난번 대선처럼 48 대 51.5 이상의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