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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아경기 D-9]“급류야 비켜라” 메달 젓는 낭랑18세

입력 | 2014-09-10 03:00:00

[나도 국가대표다]<4>카누 ‘슬라럼’ 여고생 추민희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카누 슬라럼 국가대표 추민희가 경기 하남시 미사리경정공원에서 슬라럼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추민희는 “기술을 쓰고 나면 위로 솟구쳤던 물이 머리를 타고 자꾸 흘러내려 긴 머리를 짧게 깎았다”며 “스타일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다. 이번 대회를 슬라럼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하남=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빠는 외동딸이 발레리나가 되기를 바랐다. “딸이 여성스럽게 크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원한 것은 복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활기차 힘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는 설명이었다. 딸이 결국 선택한 건 카누였다. “학교에 카누부밖에 없었다”는 다소 심심한 이유였다. 카누 슬라럼 국가대표 추민희(18·서울 광문고 3학년) 이야기다. 추민희는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카누 국가대표 19명 중 유일한 여고생이다.

지난달 28일 경기 하남시 미사리경정공원에서 만난 그는 “중학교(서울 강일중) 2학년 때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누 감독님을 찾아가 운동하고 싶다고 졸랐다. 사실 카누가 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결과는 퇴짜였다. 추민희는 “성적을 알아보시더니 중상위권인 걸 확인하고는 운동보다는 공부를 하라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듬해 전국소년체육대회 때 그는 서울대표 선수가 돼 있었다. 선수가 모자랐기 때문에 급하게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것. 그렇게 카누가 추민희를 찾아왔다.

노 하나로 배를 저어 순위를 겨루는 카누는 △잔잔한 물 위에서 속도를 다투는 ‘스프린트’와 △초속 2m 이상으로 흐르는 급류에서 장애물을 설치한 기문을 통과하는 ‘슬라럼’으로 나뉜다. 슬라럼은 통과 시간에 기술 점수를 반영해 최종 순위를 정한다. 슬라럼은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도 아닐 정도로 국내에서는 생소한 종목이다.

추민희도 줄곧 스프린트 선수로 활약하다 지난해 슬라럼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학교에 슬라럼 코치님이 안 계셨다. 대표팀 오빠들이 학교를 방문해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낯설기만 한 종목이었는데 이제는 기술 쓰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스스로 “스프린트로는 낙제점이었다”는 추민희는 슬라럼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추민희는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을 바라보며 “국가대표라는 게 자랑스러우면서 부끄러울 때도 있다. 아직도 실력이 부족한데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된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하면 결국 잘되는 거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메달 욕심까지 작은 건 아니다. 출전한다는 데 제일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최소 동메달은 꼭 따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한카누연맹도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면서 실력 키우기에 나섰다. 추민희는 “평소에는 오빠들(슬라럼 국가대표는 남자 3명, 여자 1명)이 영어를 잘해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억울한 일이 생길 때는 뉘앙스 차이를 전달하기가 힘드니까 답답할 때가 있다”면서 “영어를 정말 못 알아듣는데 이상하게 감독님이 제 욕을 하시면 다 들린다”며 웃었다.

줄곧 강원 화천군과 진천선수촌을 오가며 연습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 전국카누경기대회 참가차 이날 미사리를 찾은 추민희는 “어제가 (대회 전) 마지막으로 학교에 간 날이었다. 1, 2학년 때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참고 이겨냈기에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많이 믿어주시는 만큼 꼭 보답하겠다. 부모님께 ‘정말 사랑한다’는 말씀을 꼭 남겨 달라”며 생애 첫 언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하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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