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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 “자식 못지키고 명절은 무슨…” 합동차례상 정중히 사양

입력 | 2014-09-10 03:00:00

[세월호유가족 애끊는 한가위]진도 팽목항 ‘슬픈 추석’




[1] 추석인 8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마지막 남은 10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 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내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 차려진 가족합동기림상 앞에서 한 유가족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3]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및 국민대책회의가 세월호 모양을 본떠 마련한 ‘진실의 배’를 하늘로 띄우고 있다. 유가족이 직접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로 만든 풍선배다. 진도=박영철 skyblue@donga.com / 안산·서울=양회성 기자

추석인 8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해경 전용부두.

세월호 실종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생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45)는 수색 현장으로 떠나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일행을 애타게 기다렸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이 장관이지만 이날만큼은 특별한 부탁을 하려고 아침 일찍 나왔다. 이 장관이 도착하자 이 씨는 ‘선물’ 얘기부터 꺼냈다. “오늘이 추석이잖아요. 우리 가족들이 바라는 선물이 무엇인지 잘 아시죠. 장관님.” 이 씨는 이 장관을 꼭 껴안으면서 “이렇게 품에 안고 꼭 데리고 오세요”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외동딸인 단원고생 황지현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심명섭 씨(48·여)는 “추석 때까지 이렇게 기다릴 줄 몰랐다”며 “매일 아침 방파제 끝에 나가 밥상을 차리는 어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라며 눈물을 훔쳤다. 남은 실종자 10명 가운데 7명의 가족은 행여 추석이면 품에 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날도 어김없이 경비정을 타고 수색 현장을 찾았다.

팽목항을 찾은 귀성객과 귀경객의 표정도 하나같이 어두웠다. 참사 현장이 가까이 있는 데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린 듯 배를 기다리는 동안 숙연한 표정이었다. 팽목항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인 조도가 고향인 박철환 씨(52·경기 의정부시)는 “‘마지막 한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다’라는 현수막을 보니 차마 고향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읍 실내체육관도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였다. 수십 개에 이르던 천막이 사라지고 가족 전용 식당과 조계종, 천주교광주대교구가 마련한 천막만 덩그러니 남았다. 추석을 앞두고 진도군에서 차례상을 차려주겠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정중히 사양했다. “자식 하나 지키지 못한 죄인들이 무슨 낯으로 조상께 차례를 지내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은 자원봉사자들도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돌려보냈다. 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추석 연휴 기간만이라도 봉사자들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단원고 교장과 교사 등 5명이 7일부터 내려와 실종자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고 있다.

이날 점심상으로 오색 송편과 나물, 호박전, 된장찌개 등 음식이 차려졌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가족 전용 식당 일을 돕는 김의덕 씨(56·여·진도군 진도읍)는 “오도 가도 못하고 자식들을 기다리는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며 “명절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가족들) 말수가 적고 얼굴도 수척해 보인다”며 안쓰러워했다.

3만5000여 명이 사는 진도군도 예년과 같은 명절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읍내에 외지 차량이 붐비고 도로 곳곳에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리긴 했지만 넉넉하고 풍요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도군청 사고수습지원과의 한 직원은 “예년 같으면 읍면에서 추석 전후로 노래자랑이나 축구, 씨름대회를 열었는데 올 추석에는 세시풍속 재현 행사를 제외하고 단 한 건의 행사도 없었다”고 전했다.

스산한 분위기였지만 한가위 명절의 훈훈함도 피어났다. 가수 김장훈 씨(47)는 8일 오후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잠수사들과 해경 직원들에게 통닭 100마리, 피자 70판 등 300인분의 특식을 전달했다. 추석 전날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김 씨는 “명절인데도 쉬지도 못하고 수색작업을 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실종자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47일째인 9일까지 수색 작업은 진전이 없다. 아직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는 단원고 학생 5명과 교사 2명, 일반인 3명 등 모두 10명. 실종자 가족들은 추석 다음 날인 9일부터 물살이 빨라지는 대조기인 데다 수온이 떨어지면 수색작업이 여의치 않을 것이란 소식에 또다시 절망 속에 빠져 있다.

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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