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대통령까지 지낸 전쟁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평생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렸다. 육사를 졸업한 그가 대위로 전역한 것도 날마다 폭음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북전쟁으로 다시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농사도 짓고 부동산 중개도 했으나 모조리 실패했다. 패배를 거듭하는 북군의 총사령관을 구하지 못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마침내, 지휘관으로 몇 개 주요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인 그랜트를 선택했다. 무능한 술주정뱅이를 기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그랜트가 잘 마시는 위스키 상표가 무엇인가. 일선 지휘관 모두에게 한 상자씩 보내겠다”며 비판 등을 일축했다. 싸워 이기는 장군의 술버릇쯤은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링컨 대통령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술 때문에 말썽이 잦은 총사령관을 감싸며, 오히려 장군들에게 술을 선물하겠다는 대통령의 너그러움. 가히 낭만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벌써 15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 술에 단호한 미국군대
그러나 어떤 정치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미국 군대는 술에 관해 매우 단호한 입장이다. 군대가 술에 지배를 당해 성추행, 폭력 등 온갖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2년 국방부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원은 연구 결과, 미국 군대의 음주 상황이 ‘공중보건의 위기’라고 할 만큼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해병대는 2013년부터 모든 병사에 대해 1년에 2회씩 음주 측정을 실시해 복무 적격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해군과 공군도 무작위 측정을 해 심사키로 했다. 미국 군대만이 아니다.
2011년 호주 국방부는 군 병력의 26.4%가 폭음에 시달린다며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의 국방장관은 올 4월 의회에서 “어떤 이유로도 군대의 폭음문화가 정당화될 수 없다”며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986년 군사정권 시절 서울의 어느 음식점에서 폭탄주를 마시다 장군들이 의원들을 두들겨 팬 것은 군대 폭음문화의 일대 오점이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이 일어났을 때 이상의 합참의장은 술에 취해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감사원은 “이 의장이 저녁 자리에서 양주를 여러 잔 받아 마신 정황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번에 전역 조치된 신현돈 1군 사령관은 대통령 해외순방 중 위수지역을 이탈해 술을 지나치게 마신 끝에 품위 없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은 엄중경고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단호하게 전역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굳이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전방 사령관의 폭음에 관용의 여지가 없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젊은이들과 그 부모들이 닥쳐올 의무 복무 때문에 얼마나 애태우며, 복무 뒤 흘러간 세월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장군들이 아는가.
○ 술에 빠진 한국군대
오래전부터 한국 군대는 ‘감성 팔이’에 나서고 있다. 텔레비전의 노래 경연대회나 연예인들의 오락 프로그램에 병영을 통째로 내준다. 국민들이 군대와 친숙해지게 하기 위해서란다. 군대가 얄팍한 재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계에 유례없는 일. 병영이 연예인들의 마당이 되는 것은 군대의 본질을 오도하는 것이다.
각종 사고 이후 대책 역시 재미에 빠진 군대답게 시류에 영합하려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군대는 안전하면서도 강한 군대이다. 장군들이 맑은 정신으로 솔선수범해 합리와 상식에 따른 지휘를 할 때 그런 군대가 만들어진다. 장군뿐 아니라 많은 직업군인들이 술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대장의 술 사고를 계기로 한국 군대도 장군과 장교, 부사관 등 직업 군인들의 음주 실태를 연구하고 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