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9·11테러가 발생한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박물관, 킬링필드의 현장인 캄보디아 투올슬렝 대학살박물관, 원전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 등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다.
이 중 올해 5월 개관한 9·11 추모박물관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넓은 땅에 두 개의 연못 공원 박물관이 들어서 있고 방대하고 사실적인 자료를 다양하게 갖춰 4개월 만에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떠올랐다.
이 박물관은 비정부기구인 9·11추모재단이 건립했다. 기부금과 공적자금을 포함해 3억 달러(약 3075억 원)가 넘는 돈이 들었고 공사 기간만 8년 2개월이 걸린 대형 사업이다. 테러 발생 약 5년이 지난 2006년 3월에야 첫 삽을 뜬 것은 자금과 관련 물품을 모으고 유족과 협의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미국 사회가 9·11을 기리는 방식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정홍원 국무총리가 6월 “희생자 추모비와 추모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말한 뒤 구체적인 진척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건립 및 운영 주체를 누가 맡고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특히 엄숙하고 진지한 추도의 장소가 자칫 싸구려 단체관람지로 변질되지 않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그렇다. 물론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수색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긴 하다. 다만 이와 함께 논의해야 할 중요 사안들이 세월호 특별법 정쟁(政爭)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안타깝다.
뼈아픈 참사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그 기억을 쉽게 지우지 말아야 한다. 망각의 늪에 빠지면 반성과 발전은 없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말이 어폐가 있을 수 있고 꼭 박물관 건립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릴지에 대한 논의를 더 미뤄선 안 될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