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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하정민]9·11과 다크 투어리즘

입력 | 2014-09-11 03:00:00


하정민 국제부 기자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대참사가 일어난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는 여행을 말한다. 2000년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의 존 레넌 교수와 맬컴 폴리 교수가 출간한 같은 이름의 책에서 나온 표현이다. 사고를 반성하며 교훈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리프(Grief) 투어리즘 또는 블랙(Black) 투어리즘이라고도 한다.

9·11테러가 발생한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박물관, 킬링필드의 현장인 캄보디아 투올슬렝 대학살박물관, 원전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 등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다.

이 중 올해 5월 개관한 9·11 추모박물관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넓은 땅에 두 개의 연못 공원 박물관이 들어서 있고 방대하고 사실적인 자료를 다양하게 갖춰 4개월 만에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떠올랐다.

박물관 안에는 희생자 2983명의 얼굴 사진을 비롯한 이미지 2만3000점, 재난 담당자들의 교신 내용을 포함한 음성 기록 2000건, 생존자와 유족들의 인터뷰 및 당시 상황을 전한 뉴스 보도 등을 담은 500시간 분량의 영상물이 충실히 전시돼 있다. 건물 잔해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각종 유품, 불에 타서 망가진 앰뷸런스와 사다리, 생존자 수백 명이 빠져나올 때 사용한 원형 그대로의 계단, 일그러진 세계무역센터 간판 등을 보노라면 13년 전 벌어진 참사의 충격과 아픔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 박물관은 비정부기구인 9·11추모재단이 건립했다. 기부금과 공적자금을 포함해 3억 달러(약 3075억 원)가 넘는 돈이 들었고 공사 기간만 8년 2개월이 걸린 대형 사업이다. 테러 발생 약 5년이 지난 2006년 3월에야 첫 삽을 뜬 것은 자금과 관련 물품을 모으고 유족과 협의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미국 사회가 9·11을 기리는 방식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정홍원 국무총리가 6월 “희생자 추모비와 추모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말한 뒤 구체적인 진척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건립 및 운영 주체를 누가 맡고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특히 엄숙하고 진지한 추도의 장소가 자칫 싸구려 단체관람지로 변질되지 않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그렇다. 물론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수색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긴 하다. 다만 이와 함께 논의해야 할 중요 사안들이 세월호 특별법 정쟁(政爭)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안타깝다.

뼈아픈 참사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그 기억을 쉽게 지우지 말아야 한다. 망각의 늪에 빠지면 반성과 발전은 없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말이 어폐가 있을 수 있고 꼭 박물관 건립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릴지에 대한 논의를 더 미뤄선 안 될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