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선거법 무죄-국정원법 유죄]재판부 “대선개입 증거 없다” 결론
취재진과 몸싸움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1심 판결을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가운데)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인터뷰를 막아 서는 측근과 취재진 사이에 10여 분간의 거친 충돌 끝에 원 전 원장은 “혐의에 대해 항소심 과정에서 차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힌 뒤 법원을 떠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불과 8일 앞두고 불거진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수사 단계부터 재판 선고까지 말 그대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검찰총장 낙마와 지휘부 공백 상황에서 터진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의 항명 파동까지 이어진 논란이 1심 판결로 잠재워질지 주목된다.
○ “검찰, 정치행위→선거운동 전환 논리 자가당착”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은 원 전 원장 취임 3개월 뒤인 2009년 5월부터 댓글 활동을 해왔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처음 기소했을 때 2012년 8월 29일부터 12월까지의 댓글 활동만 선거법 위반이라고 특정했다. 2012년 8월 말부터 각 정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돼 기존에 해왔던 댓글 활동은 그 시점부터 불법 선거운동이 된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그 후 공소장을 바꾸면서 선거운동 시작 시점을 2012년 8월 말에서 1월로 앞당겼다. 대선후보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2012년 1월부터는 특정 후보 낙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당연히 성립할 수 없는데도 공소장을 바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은 국정원의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기가 되면 당연히 선거운동으로 전환된다고 주장했지만 선거운동으로 보려면 계획적이고 능동적인 계기가 더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스스로 ‘전환 논리’를 깬 점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원 전 원장이 대선이 가까워진 2012년 8, 9월 부서장회의 때 “대선에 (국정원이) 휩싸여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 등 선거중립을 강조한 것도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었다. 2012년 10월부터는 오히려 트윗 건수가 감소하기도 했다.
개인 비리로 수감됐다가 이틀 전 만기 출소한 원 전 원장은 재수감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국정원법 위반이 인정돼 전직 정보수장으로는 치명상을 입었다. 재판부도 “국가기관이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개입한 행위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걸로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재판정을 나서며 “(유죄 판결을 받은) 국정원법 위반 혐의도 북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한 것이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검찰 지휘부의 입장은 달랐다. 검찰 고위 간부는 “공직선거법은 처음부터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1심에서 예상했던 대로 판결이 나왔다”고 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보고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이 공직선거법을 적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죄가 났다. 또 지난해 서울고검 국감 때 윤석열 팀장의 항명 파동 발단이 된 추가 압수수색 때 나온 트윗 계정도 법원이 거의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법무부만 속으로 웃게 됐다”고 말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신나리·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