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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허망하게 스러진 독립구단의 꿈

입력 | 2014-09-12 03:00:00

고양 원더스 돌연 해체 충격




이헌재·스포츠부 차장


이헌재·스포츠부 차장

3년 전 이맘때였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가운데 가르마를 탄 그 남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함께 서울 야구회관 기자실에 불쑥 들어선 그는 대뜸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다닐 때나 사업을 할 때 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돈이 아닌 스토리를 통해 그간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드리고 싶었다. 경쟁에서 탈락해 우리 팀에 온 선수 중 한 명이라도 다시 1군 무대에서 성공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기부라고 생각한다.” 사재를 털어 3년간 50억 원을 내겠다던 그는 허민 구단주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대체 뭔 소리인가 했다. 방출됐거나 지명을 받지 못한 실패한 야구 선수들을 모아 잘 훈련시킨 뒤 돈 한 푼 받지 않고 프로야구 구단에 그냥 보내주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그의 말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당장 그해 SK와 갈등 끝에 자진사퇴한 ‘야신’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모셔왔다. ‘괴짜 구단주’와 ‘야신’의 조합은 창단 이듬해부터 팀 이름처럼 기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2012년 7월 원더스의 투수 이희성이 LG에 입단했다. 이후 기존 프로야구 각 팀은 원더스가 키워낸 선수들을 하나 둘씩 꾸준히 영입했다. 올해 7월 KT에 입단한 외야수 김진곤까지 22명이 프로에 입단했다. 포수 정규식은 8월 원더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다. 원더스에서 실력을 쌓은 LG 황목치승과 넥센 안태영 등은 요즘 당당히 1군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열정, 그리고 허 구단주의 지원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드라마였다. 허 구단주는 원더스 선수가 프로 구단에 입단할 때마다 1000만 원의 격려금까지 줬다. 그가 3년간 쓴 돈은 100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갈 곳 없는 선수들에게 마지막 기회의 땅이었던 원더스는 창단 3시즌 만에 해체 결정을 내렸다. 원더스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독립구단 운영에 한계를 느꼈다. KBO와 구단 운영에 대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원더스가 원했던 퓨처스리그 진입은 물론이고 퓨처스 경기 정규 편성 등이 기존 구단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김성근 감독은 “팀이 유지된다면 나도 끝까지 원더스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끝내 팀의 해체는 막지 못했다.

‘열정에게 기회를’을 모토로 했던 원더스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23명의 승자를 배출한 채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패자부활전의 무대 역시 원더스와 함께 사라졌다.

이헌재·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