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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환도 손님도 없이 20분만에 끝… 눈물뿐인 ‘해경의 날’

입력 | 2014-09-13 03:00:00

해체 앞두고 마지막 창설 기념식
“언젠가 국민사랑 되찾을 날이…”, 도열한 300명 경찰 시종일관 침통
가족들 “아빠 자랑스러워했는데… 신뢰 회복할수 있게 기회 줬으면”






해체를 앞두고 12일 인천 해양경찰청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창설 61주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한 여경(오른쪽)이 ‘해양경찰가’를 부르며 감정이 북받친 듯 울음을 참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오늘 이 자리를 그동안 부족하고 잘못했던 점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언젠가는 국민들의 사랑을 회복할 날이 올 것입니다.”

12일 오전 11시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1층 강당. 1953년 내무부 치안국 소속 해양경찰대로 출범한 해경이 창설 61주년을 맞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1996년 정부가 해양영토의 범위를 선포한 배타적경제수역법이 시행된 10일이 원래 기념일이지만 추석 연휴와 겹쳐 이날 열리게 됐다.

지난해까지 기념식에는 매년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한 뒤 인력과 장비 확충을 약속할 정도로 해경은 뜻깊은 생일상을 받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식에 참석해 ‘해양주권과 해상안전의 수호자 해양경찰’이라고 쓴 친필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12일 기념식에 참석한 해양경찰관들의 표정은 침울했다. 매년 유관 기관과 단체가 앞다퉈 보내던 화환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보낸 4개만 덩그러니 출입구를 지켰다. 퇴직 간부 외에 초청 인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승객 부실 구조의 책임을 물어 ‘해경 해체’를 발표함에 따라 해경은 사실상 마지막 기념식을 조촐하게 치르자고 의견을 모았다.

경찰관 300여 명이 도열한 가운데 국민의례가 시작됐다. 세월호 희생자와 순직자에 대한 묵념을 한 뒤 이원희 운영지원과장(56)이 순직자에게 바치는 헌사를 읽어 내려갔다. 1960년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에 나선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가 숨진 김창원 경사를 비롯해 순직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자 일부 경찰관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푹 눌러 쓴 모자 아래로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2008년과 2011년 서해에서 중국 어선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순직한 박경조 경위, 이청호 경사의 부인 등 순직자 유족 3명이 단상에 올랐다. 김석균 청장(50)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순직자 자녀에게 주는 장학금 200만 원을 이들에게 각각 건넸다. 경찰관들이 그동안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이었다.

이 경사의 부인(40)은 “중학생인 아들이 평소 ‘자랑스러운 아빠의 뒤를 이어 해양경찰관이 되겠다’며 꿈을 키워왔는데 마지막 기념식에 참석하게 돼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 경위의 부인(51)은 “해경을 해체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점을 고쳐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기념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해경의 가장 큰 자산이던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었지만 언제까지 자책하고 위축돼 있을 수 없는 만큼 하루빨리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자”고 강조했다.

기념식은 해양안전 결의문 낭독을 마지막으로 20여 분 만에 모두 끝났다. 해경은 이달부터 매월 16일을 ‘인명구조 훈련의 날’로 지정하고 전국 15개 해양경찰서별로 해상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해경은 신설될 국가안전처 산하 해양안전본부로 편입돼 독자적인 예산편성과 인사권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