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증세 논란] 복지는 느는데 조세부담률 낮아… 소득세 등 구조손질 필요한 시점에 담뱃값 등 편법 쓰고 “사실상 증세”… 사회적 합의커녕 정부 신뢰 추락
정부가 국민건강 증진 같은 명분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세 부담을 높이는 ‘슬그머니 증세(增稅)’를 선호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세제의 큰 틀을 고치는 작업이 품이 많이 드는 데다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조세 저항을 줄이고 손쉽게 세금을 걷는 선택이 역대 정권에서 반복됨에 따라 세금정책이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가랑비에 옷 젖듯 세금을 늘려가는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금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2006년에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추진하다가 실패한 뒤 국민 동의에 따라 증세를 추진하는 정공법을 포기하고 손쉬운 세수 확대 방안에 집착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학원비, 아파트 관리비 등에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과세 기반을 확대하고 소득세 면제자 비중을 대폭 늘리는 한편 주세(酒稅)의 세율을 높이는 조세개혁을 추진했다. 국민적 반발이 커지자 나중에는 학원비 중에서 자동차운전학원 무도학원에는 부가세를 부과하고 어학원 등 이른바 ‘대중적 학원’에는 부가세를 면제해줬다.
문 실장은 이날 “현 상황에서 정공법식 증세를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정난이 심각한 수준이고 세수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판단이 섰을 때 소득세 면세자를 대폭 줄이고 부가세 세율을 올리는 방향의 증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아직은 이런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개혁을 늦출 시간이 많지 않다고 우려한다. 당장 정부는 내년에 30조 원이 넘는 재정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부채는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9개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에 이르는 동안 연평균 국가부채 증가율을 한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증가율은 7.4%로 프랑스(16.0%)와 미국(8.6%)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증세는 건드리지 않고 국채를 찍어 돈을 조달한 결과다.
문제는 앞으로다. 박근혜 정부가 내년부터 기초연금 등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리고 대규모 적자재정을 펴기로 했기 때문에 세금을 더 걷지 않고서는 세수 부족 현상이 만성화될 수밖에 없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