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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수술복이 청록색으로 바뀐 까닭은

입력 | 2014-09-13 03:00:00

◇컬러, 그 비밀스러운 언어/조앤 엑스터트 외 지음/신기라 옮김/240쪽·2만8500원
시그마북스
뇌가 인식한 色의 본질 탐구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걸린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1024가지 색채’. 이 작품 속 수많은 색깔처럼 인간은 1000만 개 이상의 색을 인지하면서 뇌를 진화시켜 왔다. 시그마북스 제공

“색(色)은 우리의 뇌가 우주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 책의 핵심을 저자가 한 줄로 표현한 것이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이 책은 인간의 존재와 문명 나아가 자연과 우주의 본질 탐구가 색상과 크게 연관됐다는 사실을 각종 이론을 통해 증명해 나간다. 저자는 생물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 역사학, 미학, 종교학 등을 마치 ‘메시가 드리블하듯’ 종횡무진 누비며 색의 본질을 탐구한다.

플라톤, 뉴턴, 다빈치, 괴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들 색의 본질에 대해 고심했다. 기원전 5세기 플라톤은 우리 눈의 색각(色覺)과 눈물의 관계를 연구했다. 뉴턴은 암실 창문에 구멍을 뚫고 유리 프리즘을 통해 색의 스펙트럼을 관찰했다. 괴테는 색을 그룹별로 구분해 무질서한 색의 세계를 체계화하려 했다. 다만 이들은 색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색과 뇌를 연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색은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보는 모든 색은 뇌의 해석이다. 특정 물질에 반사된 빛이 눈동자로 들어가 망막에 닿으면 색을 인지하는 체세포인 간상체와 추상체가 신경 신호를 생성해 뇌에 보낸다. 이 과정에서 특정 색이 인식된다.

인간의 진화에는 이 같은 색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조상 격인 영장류는 야행성으로 세상을 두 가지 색으로만 지각했다. 하지만 뇌 후두엽의 시각피질이 발달하면서 세 가지 색 이상을 식별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켰다.

유럽 중세 때는 빨간색을 선인장에 붙어사는 코치닐이란 벌레를 통해 만들었다. 이 벌레 7만 마리를 말린 후 곱게 빻아야 겨우 452g의 적색 염료가 나올 정도로 귀했다. 그러다 보니 귀족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1910년도에 나온 최초의 택시 ‘다라크’는 빨간색이었다. 하지만 1915년 존 헤르츠라는 인물이 보행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낮에 가장 잘 보이는 색상인 노란색 택시를 미국 시카고에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대중교통 발달의 계기가 됐다.

20세기 초 외과 의사들은 청결을 위해 흰색 수술복을 사용했다. 하지만 흰색 수술복에 튄 빨간 핏자국을 보다가 다시 흰 수술복을 보면 빨간색의 보색인 녹색이 아른거리는 ‘시각 둔감화’ 현상이 생겨 수술에 지장을 줬다. 이에 1960년대 빨간색의 보색인 청록색 수술복이 도입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것도 ‘색’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의 밭의 작물이 풍작인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밭에 서서 바로 내려다보면 작물과 함께 먼지, 자갈 등 여러 색이 눈에 띈다. 반면 이웃집 밭은 옆에서 비스듬히 보기 때문에 시야에 다른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녹색 작물만 보여 풍작처럼 보인다는 것.

색은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1923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자외선 방출에 따라 우주에서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물체는 더 붉게 보이고, 가까워지는 물체는 더 파랗게 보인다는 점을 이용해 우주의 팽창 이론을 설명했다.

이 책을 보면 일상에서 매일 느끼는 색의 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과학적 지식, 상상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일독을 권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