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 데이트 비용 없는 2030… “집에서 뽁뽁이 터뜨릴 판” 추석상 구조조정한 30대男… “비싼 단감대신 곶감 올렸죠” 연휴 끝나니 커피값 ‘쑥’… “사치품이 된 아메으리∼카노”
박 씨는 교통비를 제외하고 하루 용돈으로 6000원을 써왔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건물 1층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3500원짜리 도시락을 사면 딱 맞는 액수. 저녁식사는 야근을 하면서 해결했다. 야근을 하면 회사에서 식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뱃값이 2000원 올라 4500원이 되면 점심은 1500원에 해결해야 한다. 박 씨는 “회사 주변의 주먹밥은 2500원, 편의점 샌드위치도 2000원이라 당초 용돈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담뱃값, 커피값 인상에 젊은 직장인 ‘비상’
직장인 나모 씨(35)는 입사할 때 사규(社規)에 따라 금연서약서까지 썼지만 시간 날 때마다 회사 밖에 나가 몰래 담배를 피우는 궁상맞은 애연가. 담배 냄새에 인상을 쓰는 옆자리 여직원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비밀스러운 생활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이중 생활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 씨는 “담배를 끊으려고 수차례 결심했지만 결국 의지보다 돈 때문에 끊게 생겼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밀가루 오르면 빵값 뛰는데… 내 월급만은 늘 제자리걸음 ▼
커피를 즐기던 젊은 여성 직장인들은 커피값 인상에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00∼4000원씩 하는 가격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았던 그녀들. 올해 추석연휴를 전후로 한 잔에 200∼300원 오르면서 이제는 4000∼5000원대가 돼버렸다. 한 직장인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아메으리∼카노’가 되는 바람에 회사 생활의 유일한 낙이 점점 사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집에서 ‘뽁뽁이’ 터뜨리고 차례상은 ‘구조조정’
B기업 입사 4년차의 피모 대리(28·여). 대리로 진급한 후 넘쳐나는 업무로 사원 시절보다 개인 시간이 줄어 데이트할 여유조차 없다. 바쁜 그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쇼핑.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예쁘고 맘에 드는 무언가를 하나씩 사들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그녀는 쇼핑에 나섰지만 몇 개월 사이에 훌쩍 뛰어버린 옷과 화장품 가격에 놀라 빈손으로 돌아왔다. 씻고 누워 TV홈쇼핑 채널을 보면서 물건 가격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젊은 직장인들의 오랜 궁금증. 밀가루 값이 인상되면 빵과 자장면 값도 오른다. 그런데 다른 모든 생필품 가격이 올라도 ‘내 월급만은 제자리’라는 공식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결국 쇼핑도 데이트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고 낙담한다.
물론 호주머니가 가벼워도 실속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33세의 직장인 박모 씨에게 요즘 갑작스러운 데이트란 없다. 사전에 어디를 갈지 정한 뒤 그 지역의 음식점과 커피숍의 할인티켓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싸게 산다. 박 씨는 “처음에는 여자친구 앞에서 쿠폰을 사용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괜히 쫀쫀한 것 같아 눈치도 봤지만 이제는 떳떳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 쇼핑과 함께 커플이 함께 비용을 분담하는 데이트 통장도 만들어 보라”고 조언했다.
주머니가 가벼워 연애 사업만 방해받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 신모 씨(36)는 올해 ‘추석상 구조조정’에 나섰다. 차례상에 단감을 올리려면 적어도 4개가 필요하다. 예전 같으면 4000원이면 충분했는데 올해는 추석을 유난히 일찍 맞으면서 단감이 충분히 수확되지 않는 바람에 개당 4000원이 돼버렸다. 신 씨는 “단감 4개에 1만6000원을 주고 사는 건 부담스러워서 지난해 샀다가 먹지 않았던 곶감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직장문화 서비스기업인 오피스N(officen.kr)의 한성원 대표는 “월급은 적더라도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주는 복지 혜택을 지닌 기업 등 작지만 독특한 기업문화가 있는 회사로 눈을 돌리는 젊은 직장인들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