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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은행… 前現정권 줄타고 온 회장-행장 권력싸움

입력 | 2014-09-15 03:00:00

[KB금융 내분 사태]은행 지배구조 이젠 바꾸자<上>
2001년부터 끊임없는 잡음… 낙하산-관치금융 고질병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갈등으로 촉발된 ‘KB금융 사태’로 국민은행의 ‘리딩 뱅크’ 지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2001년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도입된 이후 지주 회장과 행장의 갈등이 해당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전체 금융권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지배주주가 없어 지배구조가 취약한 금융회사에 정권의 줄을 타고 내려온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반목하고, 임직원들은 업무를 뒷전으로 한 채 자리보전과 승진을 위해 줄서기에 열중하는 문화가 깊게 뿌리 내렸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정권 창출 ‘공신’에게 나눠주는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정부와 이런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금융당국도 후진적인 금융 지배구조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산업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금융 선진화는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 지주 회장-행장, ‘다툼의 역사’

2001년 4월 우리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출범한 이후 국내 금융그룹에서는 금융지주 회장과 행장 간의 ‘반목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특히 KB금융은 회장과 행장 간의 알력 다툼이 2008년 지주 체제 전환 이후 줄곧 계속됐다.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은 2008년 초대 회장직을 놓고 대립한 뒤 사외이사, 은행 부행장 등의 선임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뒤를 이은 어윤대 전 회장 역시 임기 후반에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과 갈등을 빚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도 수뇌부 간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팔성 전 회장은 은행장 권한을 축소하는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려다 이종휘 전 행장, 이순우 행장의 반발을 샀다. 앞서 관료 출신인 박병원 전 우리금융 회장도 박해춘 당시 행장과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마찰을 빚었고, 초대 회장인 윤병철 회장은 이덕훈 당시 행장과 요즘 KB금융처럼 전산시스템 도입을 놓고 대립했다. 그래서 “이순우 지주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는 지금이 창립 이래 가장 평온한 시절”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부 권력다툼 문제로 아직까지 법정공방 중인 ‘신한 사태’는 라응찬 전 회장을 따르는 이백순 전 행장이 차기 지주회장으로 거론되던 신상훈 전 지주사장을 배임혐의로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가까웠던 라 전 회장이 호남 출신인 신 전 사장을 배제하고 장기집권 체제를 굳히려다 벌어진 사태라는 해석이 나왔다.

○ 은행 편중 구조에 낙하산 관행까지 겹쳐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초 금융지주 도입의 취지는 대형화, 겸업화를 통해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생긴 부실 은행을 구조조정하는 수단으로 쓰다 보니 지주회사에 걸맞은 사업구조와 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춘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지주 대부분은 자산 비중과 수익창출 여력이 은행에 과도하게 편중돼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권한과 책임에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전체 13개 금융지주회사 가운데 은행을 자회사로 둔 11개 금융지주의 총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는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은행 편중이 높은 상황에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관계는 옥상옥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회장과 행장을 겸직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기다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동일인 주식 소유 한도를 10%로 제한하고 있고, 산업자본은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은행과 지주회사에 ‘지배주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은행과 지주회사의 소유권을 분산시켜 실질적인 주인이 없게 만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각종 규제와 감독수단을 통해 금융회사 경영에 간섭하고 인사에 개입하는 등 관치금융이 일상화됐다.

이번 KB사태도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사장’으로 KB금융에 자리 잡은 임 회장과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실세 인맥으로 알려진 이 전 행장의 대결 구도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지분도 없는 민간기업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정권 입맛에 맞춰 수뇌부를 갈아 치운다”며 “출신 배경이 다른 회장과 행장이 선임되면 내부 갈등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권에 줄을 대 금융회사 CEO 자리를 꿰찬 ‘낙하산 인사’들은 그동안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 비전을 추구하는 대신 권력 투쟁과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 때문에 임직원들은 CEO 교체 때마다 달라지는 경영 방침과 업무 혼선으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본연의 업무보다 줄 대기에 치중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기회에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며 “무엇보다 정권의 인사 개입과 과도한 경영 간섭을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임수 imsoo@donga.com·유재동·신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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