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배구조 이젠 바꾸자]<下>
하지만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이런 분위기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회장이 행장까지 겸임하는 ‘무늬만 지주사’가 많아지고 있고 외국계 금융사를 중심으로 아예 지주사를 해체하는 곳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겨우 지주사의 틀을 갖춘 곳은 KB금융처럼 수뇌부끼리 무한 권력투쟁에 나서며 경영을 내팽개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경영진 간의 권한과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파행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 한국 금융지주사의 역주행
선진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는 1980, 90년대부터 지금의 형태로 유지, 발전돼 왔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은행과 증권업을 분리해오다 1999년부터는 모든 업종의 금융사를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사의 설립을 허용했다. 일본도 1997년 은행 증권 보험지주회사에 대한 설립·감독 규정을 두기 시작했고 영국은 이보다 앞선 1986년 ‘금융 빅뱅’을 통해 각 금융사 간의 경계를 허물고 초대형 ‘메가 뱅크’들을 육성해왔다.
하지만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당초 지주사의 도입 취지를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지주사들의 은행 비중은 84%(자산 기준)로 금융투자나 보험 등 다른 업권들의 비중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3% 안팎으로 60∼70%에 이르는 글로벌 금융그룹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금융지주사들이 그동안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저축은행 인수, 해외 진출 등의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때문에 금융사 지배구조가 과거의 형태로 돌아가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산은, 우리, 씨티는 이미 지주사 체제를 허물기 시작했고 SC 역시 지주사 해체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많다. 경영진 구성도 단순화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지주 회장과 사장, 은행장이 각각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4대 지주사에서 사장직이 없어진 지 오래고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회장과 행장을 겸임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 ‘운영의 묘’ 살려야
물론 국내 지주사가 은행업에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최소한 현 지배구조에서 경영진 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우선 지주와 자회사 간의 적절한 역할과 업무 분담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사들은 은행장의 파워가 막강하다 보니 지주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런 애매한 상황을 없애기 위해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을 명시적으로 구분해 선을 그어 주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강흠 연세대 교수도 “자회사에 대한 업무지시는 공식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비공식적 채널을 가동하면 금융그룹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