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밤의 방랑자, 1923∼24년, 캔버스에 유채, 90×68cm
그림의 제목은 ‘밤의 방랑자’. 이 멋진 제목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에서 영감을 얻어 붙여진 것이다.
입센이 창조한 남자 주인공 보르크만은 뭉크와는 영혼의 쌍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우리에 갇힌 병든 늑대처럼 극도의 불안과 공포, 절망감에 떨면서 방황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 위층 거실 우리 안에 병든 늑대가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말이야. (귀를 기울이며 속삭인다) 들어봐 엘라. 들어봐. 왔다갔다, 왔다갔다,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있어.’
그림 속의 장면은 희곡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루고 방 안을 서성이는 고독한 늙은이는 영락없는 병든 늑대가 아닌가.
뭉크는 방황하는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와 구도를 활용했다. 화가의 두 눈은 검붉은 물감덩어리로 짓이겨져 있고, 백열전구의 불길한 노란빛은 머리카락과 얼굴, 실내복을 물들이고, 어둠은 푸른색이고, 바닥선과 화면 오른쪽 피아노의 직선은 기울어져 있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