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작 ‘Re-present’. 중국 베이징의 목조건축물 철거폐자재를 주재료로 삼았다. 갤러리현대 제공
어떤 재료든 원형 그대로 이미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재료를 작품이라 할 수 없다.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리리현대 본관에서 개인전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를 여는 심문섭 씨(71)는 메시지의 각인보다 날것의 물성(物性)에 치중한다. 밋밋하고 건조한 나열은 아니다. 재료를 통해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고, 재료가 품은 이야기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의 자리를 작가가 맡았다.
이번 전시에 쓰인 목재는 대부분 6년 전 중국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철거된 목조건축물의 잔해다. 쓸리고 깎인 시간의 흔적이 구석구석 선연한 통나무 둥치가 의자, 사다리, 탁자와 얽혀 존재의 기한을 연장받은 채 놓여 있다.
심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진행한 건축폐자재 조각 연작 ‘목신(木神)’에는 나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다. 이제는 갈수록 한 발 뒤로 물러나 재료와 관람객을 잘 연결하는 역할에 힘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 프랑스 파리 비엔날레 참가 이후 해외에서만 공개해 온 회화 작품도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캔버스 절반 이상을 여백으로 비워둔 작품이 여럿이다. 작가는 “무언가 그려 넣은 부분과 관계를 맺고 충돌하는 빈 공간의 존재를 관람객이 나름의 상상으로 채워 완성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02-734-6111∼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