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의료진이 소아 심장수술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갓 태어난 아기들의 선천성 심장을 다루는 것이 전공인 필자의 분야는 기술이 우선 탁월해야 하지만 치료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가짐, 아기의 수술 후 성장, 환자와 엄마 아빠가 누려야 하는 삶의 질에 대한 성찰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의료 분야이다. 목민심서 한 줄이 가슴에 닿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으리라.
누군가 당신 직업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심장외과의는 아기환자의 부모-후견인
선천성 심장병은 기형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갖는 병이다. 태어나자마자 빨리 진단해 기형을 정상으로 바꿔줘야 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수술 적기(適期)가 있어서 수개월을 일부러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마의 체온을 느껴볼 여유도 주지 않고 수술을 해주어야 청색증, 저산소증, 심부전 등 또 다른 생명위협 요인을 막을 수 있다.
수술 팀은 엄마이고 아빠이고 후견인이고 해결사이며 때로 아기 부모의 부모이기도 해야 한다. 겉으로는 ‘살릴 수 있다’고 자신감과 신뢰를 많이 말하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미성숙한 인체를 다루고, 온갖 첨단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간혹 부모들의 병원비 지불 능력까지 배려해야 한다.
국내 최초이면서 유일한 어린이 종합병원이었던 서울대병원이 문을 연 1986년만 해도 선천성 심장 기형 수술 성적은 100명의 아기 중 17명이 사망하던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7명 정도다. 세계 어느 학회를 가도 세계 의료계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 덕은 고스란히 우리의 아기들과 가족들이 누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아픈 비밀 숨기고 희망만 얘기해야
30년 경력이다 보니 서서히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이 보인다. 해결책이 대부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무리 정상에 가까운 모양으로 성형하더라도 수술을 받은 아기들 중에는 기형 정도가 심할수록, 유전자 이상이 있을수록, 수술을 여러 번 거칠수록 정상인의 자연 수명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의사인 나는 앞으로 올 상황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진다. 아기도 아기이지만 앞으로 엄마 아빠가 온통 자식 걱정으로 고통의 삶으로 내몰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비밀(?)을 숨겨 두고 희망과 미래만을 주고 싶은데 요즘은 인터넷 등으로 엄마 아빠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와 힘들 때가 있다. 때로 무책임한 의사로 치부되고 보호자들의 분노와 협박과 의료소송에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분들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다소 내게 위험이 오더라도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사려 깊은 배려를 소신으로 지키고 싶다. 부디 의사들의 이런 충정이 널리 알려져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실력 있는 흉부외과의들이 계속 나와 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세계 의료를 선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 여러분도 공감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