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차장
세금만큼 민감한 게 없다. 사람이 태어나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납세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피해 보려 발버둥치는 것 또한 이 두 가지다. 그러니 어느 정권, 어느 정치인이 세금을 올리겠다고 나서겠는가. 1977년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박정희 정권조차 2년 뒤 무너질 정도로 증세의 파괴력은 위협적이다.
누구보다 그 파괴력을 잘 아는 박근혜 대통령이 총대를 멨다. 가장 손쉬운 간접세와 인두세(人頭稅) 인상을 택했으니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지사다. 더욱이 그동안 잊을 만하면 ‘증세는 없다’고 상기시켜줬으니 빠져나갈 구멍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헷갈린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참을 수 없는 비겁함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중앙정부와 보육예산 전쟁을 벌였다. 그렇게 곳간이 비었다며 아우성을 친 서울시의 주민세는 4800원이다. 조례만 바꾸면 당장 주민세 수입이 2배 늘지만 박 시장은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표는 철학이나 소신보다 중요한 법이다.
그 대신 서울시는 올해 3월 상한선을 2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중앙정부에 건의했다. 중앙정부를 핑계 삼아 주민세를 올리겠다는 꼼수다. 이참에 중앙정부는 원래 법에 없던 하한선(2016년 1만 원)까지 만들어줄 계획이다. 이왕 욕먹을 바에야 확실하게 서비스하겠다는 중앙정부의 희생정신이 돋보인다.
현재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전체의 52%인 127곳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 지자체들의 평균 주민세는 4570원이다. 당장 세금을 더 거둬들일 길이 있는데도 중앙정부에 손만 내미니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가 무색하다.
박 대통령도 증세와 관련해 ‘원죄’가 있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에 반대했다. ‘실제 정부를 운영해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박 대통령부터 솔직히 고백해야 국민도 수긍한다. 16일 국무회의가 고해성사의 첫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