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처음으로 작심한 듯이 견해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의 특검 추천위원을 야당과 유족에게 사실상 할애한 여야 2차 합의안에 대해선 “마지막 결단이라고 생각한다”고 협상의 여지를 없앴다.
박 대통령의 언급은 본보 사설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맞는 말이다. 야당과 유가족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이렇듯 분명하게 의견을 밝힌 것은 국민 다수의 여론에 따라 파행정국을 푸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야당이 일부 유가족 의사만 받들고 있는 데다 세월호 특별법을 빌미로 국회에서 모든 법안의 통과까지 막고 있는 데 대한 국민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했다. 유족들이 감성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면 정부여당은 이성의 논리로 대했기 때문에 여태 평행선을 달려온 측면이 있다. 만일 대통령이 유족의 아픔에 절절히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진심을 담아 국민에게 호소하는 ‘광폭의 정치’를 보였다면 이번 결단에 더 많은 지지가 나왔을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라”는 세월호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법과 원칙만을 고수하는 박정(薄情)한 정치로 맞선 느낌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언급을 장관들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한 것도 적절하지 못했다. 같은 말이라도 어느 자리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다른 법이다. 여야 지도부나 유가족을 만나서 말하든지, ‘국민과의 대화’ 자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국민을 바라보듯 기자회견을 통해 의견을 밝혔더라면 진정성이 전달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비도 내놓아야 한다고 한 발언도 적절하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직무 유기에 대해 언론에서 비판하고 국민은 ‘국회 해산’까지 입에 담더라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언급할 일은 아니다. 해외 순방을 앞둔 대통령으로선 세월호 교착 정국과 국정 마비 상황을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책임의식에서 비판을 각오하고 이런 발언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을 오히려 더 꼬이게 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