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주하림(1986∼ )
나는 그것들과 작별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향해 가요
―배수아 ‘북쪽 거실’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비버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은 몸도 마음도 집시인 화자들이 거침없이 펼치는 성적 판타지가 인상적이다. ‘미찌꼬의 오르가즘은 모든 것을 병든 기관지처럼 빨아들이고 뱉어내지 굶주림에 지친 채로 오, 미찌꼬, 미찌꼬’(시 ‘미찌꼬의 호사가’)같이 요사스러운 매력을 뿜는 시구가 즐비한데, 간간 ‘왜 네 영혼은 영혼이 들지 않는 아픈 몸만 골라 떠도니’(시 ‘텍스처 무비’)같이 단아한 시구가 열을 가라앉히고 숨을 돌리게 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