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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 걸린 태권도 경기, 금메달 5000만원 거래”

입력 | 2014-09-17 03:00:00

태권도인들 “자살로 밝혀진 황당 경고패는 빙산의 일각”




지난해 태권도 경기 부당 판정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밀중 관장(당시 47세)이 조직적인 승부조작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16일 태권도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전 관장은 아들이 태권도 명문고를 나온 J대 태권도학과 최모 교수(48)의 자녀에게 어이없는 경고 누적으로 진 뒤 부당한 판정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었다. 본보 취재팀이 16일 다수의 태권도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와 비슷한 비리가 비일비재해 개혁이 절실하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태권도 관계자들은 전국대회에서 승부조작이 만연한 상태라고 말한다. 특히 고교, 그것도 고교 3학년에 집중된다. 오용진 전 서울시태권도협회 기술전문위 수석부의장은 “고3이 되면 전국대회 메달이 있어야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며 “그때까지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금메달 5000만 원, 은메달 3000만 원 정도를 주고 청탁에 나선다”고 가이드라인이 되는 금액을 밝혔다. 이는 2006년 학부모에게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나섰던 대한태권도협회 부위원장 송모 씨(58)가 검찰 조사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전국대회 금메달 2000만∼2500만 원, 은메달 1000만∼1500만 원, 동메달 500만 원”이라고 밝혔던 청탁 금액보다 높아진 것이다.

이런 비리가 만연함에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것은 태권도 분야의 독특한 ‘폐쇄성’ 때문이다. 소수의 중고교와 일부 대학에만 태권도 학과가 있다 보니 전체 태권도인이 결국 서로 ‘형님, 동생’으로 잘 아는 사이다. 지방 태권도협회의 한 간부는 “돈을 건넸지만 메달을 따지 못하고 돈도 돌려받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금전이 오간 승부조작 문제가 드러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태권도 지도자의 행태도 문제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제자가 승부조작 피해를 보더라도 항의 없이 넘어가기 일쑤다. 오 전 수석부의장은 “전 관장 자살의 계기가 된 부정 시합도 학부모와 학생은 억울해했지만 코치나 감독은 심판과 한번 이야기하더니 자리를 떴다”며 “제자가 당하는 것을 내버려 둔 비열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태권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등부 태권도 대회는 매년 10여 차례 열린다. 한 태권도장 관장은 “지도자 입장에서는 설령 제자 한 명이 승부조작 피해를 보더라도 다음 대회에서는 다른 제자가 이득을 볼 수도 있는 구조”라며 “관행으로 보는 데다 심판과의 관계도 있어 눈앞의 승부조작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본보가 접촉한 한 현직 고교 태권도 감독 C 씨는 “태권도 시합에서 승부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태권도 쇄신 방안을 발표했다. 승부조작 가담자가 적발되면 기소 즉시 단증(段證) 및 심판자격증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형이 확정되면 자격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승부조작으로 기소되면 체육지도자 자격을 1년 이내에서 정지하거나 취소하도록 하고,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이 확정되면 영구 추방되도록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전 관장 아들 승부조작 사건의 주요 피의자인 김모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45)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김 씨의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아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재명 jmpark@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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