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 돈짜리 금반지 공임은 8000원으로 20년 전에 비해 오히려 2000원이 싸졌다. 다른 물가는 몇 배나 올랐는데 금반지 공임은 거꾸로 내려갔다. 한국 귀금속 디자인의 현주소다. 일반인들에게 금과 다이아몬드는 무게와 크기만이 관심이지 디자인은 뒷전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귀금속 디자인은 '단순 작업'으로 평가절하돼 몇 십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소품종 대량생산 위주의 한국의 귀금속 산업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꾸는데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귀금속은 '가락지'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귀금속과 보석에도 '한류디자인'이 나올 때가 됐다. 원광대 귀금속보석공예학과의 변신을 주목하는 이유다.
학과가 갖추고 있는 인프라는 전국 최고 수준. 미대에 속해 있는데도 5층짜리 단독 건물을 학과 단독으로 사용 중이다. 이 안에는 각 학년이 쓸 수 있는 다양한 실습실과 모든 귀금속을 가공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자재들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좋은 시설은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산실이기도 하다. 실습실에서 오랜 시간 함께 과제에 몰두하다보니 부부의 연을 맺은 커플이 이 학과에서만 무려 80쌍이나 나왔다.
학과가 변화에 나선 이유는 기능 위주의 기존 교육으로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가능한 인재를 공급할 수 없다고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과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탈리아 리치몬드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Creative Academy)'다. 리치몬드 그룹은 까르띠에, 피아제, 몽블랑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20여 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 그룹은 2004년 디자인 사관학교인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를 설립해 디자이너들에게 독창적인 교육을 시킨 뒤 계열사로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원광대 귀금속보석공예학과의 변신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고승근 교수는 "귀금속보석공예학과가 지향하고 있는 디자인 중심 교육은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즉 지성 감성 인성의 가치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재발견하고 이를 창의적 사고의 자양분으로 삼아 인간중심의 주얼리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기르겠다는 것. 한마디로 '인문융합 창의 디자인'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학과의 새로운 시도는 최근 교육부 선정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5년간 매년 3억 원씩 받는 지원금을 더 좋은 시설을 만들고 더 우수한 교원을 채용하는 데 쓸 예정이다.
원광대 귀금속보석공예학과 4학년 학생들이 졸업작품을 만들고 있다. 학과는 기존의 실기는 실기대로 장점을 유지하고 디자인마인드 확립을 위한 교과개정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시장에 나간다면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주얼리 시장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그 과실을 누릴 수 있고, 시장 규모도 키울 수 있다고 고승근 교수는 지적한다.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 값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1000만 원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세팅, 즉 디자인이 끝난 후 그 차이는 배로 벌어진다. 티파니에서 디자인한 반지는 2000만 원인데, 한국에서 디자인한 것은 1100만 원에 불과하다. 디자인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디자인 수준에 따라 같은 재료를 사용한 귀금속 가격이 15배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고승근 귀금속보석공예학과 교수가 '유색보석감별'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현미경을 이용한 다이아몬드 감정법을 가르치고 있다.
원광대 귀금속보석공예학과의 도전은 '누에의 허물벗기'에 비견할 만하다. 아직도 몇 번이나 변신을 꾀해야 할 것이다.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고 교수는 말한다. "학과 경쟁력을 갖추면 좋은 학생이 지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교수들을 확보할 수 있고, 좋은 교수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구축하고 싶은 '선순환 사이클'이다."
익산=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