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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에 ‘너 국정원이지’ 실랑이 중 유족이 주먹질”

입력 | 2014-09-18 03:00:00

[세월호 유족 음주 폭행 파문]목격자-피해자 진술로 재구성한 사건

일식집서 회식후 대리운전 불러
30분 지체에 기사 “더 못기다려” 항의… “의원앞에서 버릇없다” 시비 붙어
주먹-발길질 당한 기사 전치 2주… 유족 “우리도 맞았다” 안산서 입원




대리기사를 집단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입원해 있던 경기 안산 한도병원에서 나와 안산 합동분향소로 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이 한도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 마스크를 쓰고 있는 김 부위원장은 치아가 4개 부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임원진 등 일부 유가족이 대리운전 기사와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도 폭행을 당해 부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피해자인 대리기사와 목격자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들어봤다.

17일 오전 1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의 한 일식집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 김형기 수석부위원장 등 유가족 5명 중 몇 명이 대리운전 기사 이모 씨를 폭행하는 모습이 인근 빌딩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왼쪽 사진). 몸싸움 직후 한 사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오른쪽 사진). CCTV 캡쳐

○ 폭언 시비에 이어 집단 폭행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 등 유가족 5명은 16일 오후 9시 반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별관 뒤쪽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함께 세꼬시에 소주, 맥주를 먹었다. 이들은 경기 안산으로 가는 대리기사를 불렀다. 대리기사 이모 씨(52)는 밤 12시쯤 도착했다. 하지만 식당 앞에서 일행들이 대화를 계속 하며 움직일 생각을 안 해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른 기사를 불러주십쇼”라고 했고, 그 일로 시비가 붙었다.

대리기사 이 씨는 김 의원이 “소속이 어디냐,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러냐”고 몰아붙였다고 했다. 이 씨가 “대리기사도 사람인데 인격적 대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김 의원이 “아, 나 국회의원이야”라며 명함을 건넸다. 이어 김 의원이 이 씨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고 이 씨가 없다고 했더니 일행이 “의원님 앞에서 버릇없다”고 제지했다. 이 씨가 “국회의원이면 굽실거려야 하나. 국회의원이 뭔데?”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수행원이 “야, 너 국정원 직원이지?”라며 이 씨의 얼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를 본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가와 이 씨의 멱살을 잡고 “뭐야, 이 ××”라며 주먹을 휘둘렀다고 했다. 17일 오전 경기 부천시 한 정형외과에서 본보 기자와 만났을 때 이 씨가 입은 와이셔츠 맨 위 단추는 뜯겨 있었고 안쪽에 피도 조금 묻어 있었다. 목엔 빨갛게 긁힌 흔적이 선명했다. 이 씨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받았다.

이 씨가 폭행을 당한 과정은 이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 노모 씨(35), 김모 씨(35)와의 인터뷰 내용과도 일치한다. 두 사람도 말리는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얼굴을 맞고 티셔츠 앞쪽이 찢어지는 등 피해를 봤다고 했다. 목격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주먹과 무릎으로 이 씨의 허리를 때렸고 이 씨가 넘어지자 발로 찼다”고 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몰고 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김 의원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세월호 특별법 관련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회의를 하기 위해 집행부와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고 했다. 대리기사에 대해선 “이야기가 잘 안 풀려 신분을 밝혔고 기다리게 한 건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폭행 상황은 당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느라 잘 못 봤다”며 “난 김 위원장을 말렸다”고 했다.

○ 세월호 유가족 “죄송하고 부끄러워”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을 땐 폭행이 멈춘 상황이었다. 경찰이 임의동행을 요구했지만 유가족들은 “우리도 폭행당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거부했다. 인근의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중상자가 아니라 입원이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오전 4시 반경 경기 안산 한도병원으로 이송됐다. 김병권 위원장은 왼쪽 팔, 김형기 부위원장은 치아를 다쳤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그러나 대리기사 이 씨와 목격자들은 “김 부위원장이 맞아서 다친 게 아니라 혼자 헛발질을 해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쳤다”고 반박했다. 이 씨도 “당시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쌍방 폭행 여부는) 확인하면 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유가족들이 입원한 안산 한도병원 2인실 일반병실엔 일반인의 면회가 제한된 채 하루 종일 대책위 관계자들이 오갔다. 전화를 하고 서로 회의를 하는 등 분주한 분위기였다. 폭행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유가족들은 격앙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퇴 결정을 내린 한 임원은 이날 긴급회의 후 “이제 공인으로 봐야 하는데 신중했어야 했다. (폭행은) 잘못한 거다”라고 말했다. 단원고 유가족 A 씨는 “부끄럽고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 우리가 술 먹고 폭력 휘두르는 사람들이 됐다”며 “유가족의 진정한 의지를 대변할 집행부가 들어서길 바란다”고 했다.

대리기사 이 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에 ‘실망했다’고 했다. 이 씨는 “세월호 성금도 내고 경기 안산시의 분향소도 갔다 왔고, 울기도 했다. 일반 사람에게 맞은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김현 의원에 대해 “김 의원이 처음에 내가 가겠다는 걸 붙잡고 시비만 걸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추후 일방 폭행인지 쌍방 폭행인지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홍구 windup@donga.com·박성진 / 안산=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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