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캐디 인권침해 실태
경력 20년차 현직 캐디 이모 씨(46·여)는 “골프장 곳곳에 성추행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통상 캐디는 라운딩을 할 때 카트를 운전하는데 흑심을 품은 손님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이 씨는 “운전석 뒤에 앉은 손님이 캐디가 앉을 의자에 손을 턱하니 놓고 기다린다. 방심하다가는 손을 깔고 앉게 되는데 성적 수치심이 든다”고 말했다. 캐디가 항의하면 손님들이 순식간에 ‘한패’가 된다. 이 씨는 “캐디가 ‘왜 이러시느냐’고 따지면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라고 발뺌하거나 ‘우린 그런 적 없다’며 반박한다”고 말했다. 캐디의 명찰을 보는 척하며 가슴을 뚫어져라 응시하거나 만지려는 손님도 있기 때문에 이 씨는 요즘 명찰을 모자에 달고 다닌다.
자신의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손님들의 ‘음담패설’은 여성 캐디들에게 언어폭력과 같다. 전직 캐디 이모 씨(30·경력 5년)는 “골프 특성상 캐디와 손님들이 함께 걸어 다니며 대화할 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여성 캐디를 만만하게 본 손님들 사이에서는 성적 농담이 쏟아져 나오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음담패설로 ‘골프와 섹스의 유사점을 아니?’ ‘구멍에 집어넣는다!’ 등이 있다”고 말했다. 캐디는 손님에게 경기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데 일부 골퍼는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고도 “캐디가 엉뚱한 클럽을 줬다” “그린 기울기를 잘못 봐줬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인격적 모독을 주기도 한다.
올해 2월 대법원은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캐디는 고용주의 부당해고, 임금 미지급 등의 부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골프장 측의 불공정한 처우에도 쉽게 반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또 이들의 의견을 대변해줄 노동조합조차 존재하지 않다 보니 집단 대응에 나서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캐디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겨울 비수기에 골프장에서 캐디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는 임병무 이포고교(경기 여주시) 골프팀 감독(52)은 “성추행을 하는 손님이 있으면 치한을 퇴치하듯이 ‘왜 이러세요!’라고 크게 외쳐 주변에 알리라고 한다.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골프채를 던진 손님에게는 골프채를 주워 잘 닦아 다시 건네 손님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라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최혜령·이철호 기자